유가족 “안전한 대한민국 위해 발 벗고 나설 것”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어느새 200일이 넘었다. 계절이 두 번 바뀌었고 언제든지 찾아오라던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청와대 앞에서 기다리던 유가족들은 농성 시작 76일만인 지난 5일 철수했다. 길에서 더위와 싸우던 가족들은 이제 추위와 싸우고 있지만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는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변한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전대신문>은 지난 1일 세월호 참사 200일 추모문화제로 가는 ‘기억버스’를 따라 1박2일간 진도에 다녀왔다.

▲ 세월호 참사 200일 추모문화제 ‘기억을 새기다’에 참여한 사람들이 메시지가 담긴 종이배를 노란 풍선에 묶어 날리고 있다.

바래져가는 기억을 새기다
200여명의 사람들이 기억버스에 몸을 실었다. 광주 시청 앞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한 버스는 오후 2시쯤 팽목항에 도착했다.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던 날 실종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리본등과 함께 매달려있던 풍경소리가 팽목항을 감쌌다. 실종자들이 돌아오길 바라며 가족들이 차려놓은 상에는 운동화와 과일, 과자 등이 올려져있었다. 초코파이 껍질은 거센 바닷바람 사이에서 이미 색이 바래있었다.

등대로 가는 길 중간에는 신양호 작가(54)가 만든 기억의자에서 사람들이 노란 종이배를 접어 메시지를 적고 있었다. 문흥중앙초 3학년 강연지 양(10)은 동생에게 종이배 접는 법을 알려주고 ‘기억할게요. 잊지 않을게요’라는 문구를 적었다. 강 양은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엄마, 아빠랑 함께 왔다”며 “세월호 침몰을 기억할 것이고 언니, 오빠들이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종이배를 접었다”고 말했다.

 ▲ 추모문화제에 참여한 아이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담긴 노란 종이배를 접고 있다.

이날 팽목항은 추모문화제에 참석한 사람들과 언론들로 붐볐다. 종편 언론과 정부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TV조선은 좀 안 왔으면 좋겠어 정말”이라는 말이 주변에서 들리기도 했다. 난간에 걸린 노란 리본마다 국화를 꽂고 있던 유 씨도 “대구에서 국화 150송이를 가져와 추모할 수 있는 곳마다 꽂고 있다”며 “200일이 지났지만 무능한 정부 때문에 변화가 없다. 바뀌지 않을 것이다”고 밝혔다.

윤정귀 작가(64)의 솟대가 세워지고 명창의 노래와 살풀이도 이어졌다. 윤 작가는 “솟대는 희망과 꿈을 상징한다”며 “하루속히 진실이 밝혀지고 실종자들이 돌아오길 바라는 모든 분들의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신 작가는 “팽목항에 온 사람들이 서둘러 돌아가지 않고 기억의자에 앉아 조금 더 머물렀다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며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기 때문에 튼튼하게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좋다”고 전했다.

‘단원고 2-1 조은화, 2-2 허다윤, 2-6 남현철, 박영인 학생, 단원고 고창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 권혁규 부자, 이영숙 씨.’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이름이다. 전명선 가족대책위 부위원장은 “실종자 가족들이 ‘이제는 우리도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말씀 하신다”며 “아직도 매일 똑같은 4월 16일을 맞는 가족 분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다”고 말했다. 전 부위원장은 “우리 같은 아픔 겪는 사람들이  없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발 벗고 나설 것이다”고 말했다.

5시쯤 추모문화제가 끝나자 구름으로 덮여 흐렸던 하늘에 한줌 햇볕이 들었다. 기억버스는 돌아갔지만 <전대신문>은 하루 더 머무르기로 하고 진도체육관으로 향했다.

▲ 추모문화제가 진행 중인 팽목항 전경 모습.

그저 아무 말 없이 안아준다면
진도체육관에는 적막이 흘렀다. 실종자 가족들, 언론, 봉사자 등으로 북적이던 곳에는 남은 실종자 가족들과 봉사자들만이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체육관 안쪽에 놓인 두 개의 모니터에는 뉴스와 수색중인 세월호 참사 현장을 보여주는 화면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 날은 진도에서 가장 큰 축제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읍내로 나가니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아이들은 놀이기구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고 길거리 포장마차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메인 무대에는 가장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마지막 무대에 가수 김장훈이 올랐다. 세월호 참사 이후 20번째 방문한 진도였다. 그는 트레이드 마크인 발차기를 선보이며 흥겨운 공연을 이어가던 중 진도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각종 루머와 900억원에 이르는 경제적 피해, 이를 방관하는 정부 탓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진도 군민들을 위로했다. “나는 일을 할 수 있을 때만 홍보대사를 맡는다”며 “루머와 오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진도 군민을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진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고, 이곳의 농수산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최선을 다해 알리겠다”고 말했다. 또한 “루머나 오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높은 분들에게 말해봤지만 외면당했다”며 “일개 딴따라인 나도 이렇게 움직이는데 국가라면, 나라의 지도자라면 어려운 민초를 위해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진도읍장에서 공연 중인 김장훈 씨.

그날 저녁 진도체육관에 나타났던 김 씨를 다음날 진도 읍장에서도 볼 수 있었다. ‘김장훈 장터 음악회’에 모여 있는 상인들과 군민들 사이로 그가 보였다. 이날도 역시 홍주와 함께였다. 벌써 홍주 반병을 비운 그는 직접 준비한 공연으로 진도 군민들을 위로했다. 그는 "신영식 목포해양대 교수와 이인태 전남대 해양수산정책연구소장에게 의뢰한 결과, 진도산 수산물에선 벤조피렌이 기준치보다 훨씬 낮게 나왔다"며 "진도 수산물과 관련해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루머가 떠도는데 과학적 데이터를 제시해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진도에 오기 전 ‘진도 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말에 걱정했던 것과 달리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진도 군민들은 서로를 잘 품어주고 있었다. 그 징검다리 역할을 김장훈 씨가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부는 유가족들을 투사로 만들었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의 손을 잡은 건 국민이었다.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모두 헤아릴 순 없지만 잡은 손 놓지 않고 모든 진실이 밝혀진 후 조금 더 살만한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