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도 된다’는 말이 참 싫다. ‘알아서 뭐 하느냐?’는 질문도 싫다. 알아서 나쁠 건 없다. 자신이 관련된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구성원 간 소통 과정에 놓여야 할 일이 누군가의 묵인으로, 혹은 무시로 그 일과 관련된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면, 아니 ‘알려야 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면 이는 분명한 문제다. 소통의 의미를 모르거나, 침묵 당한 상대방을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았거나.

농생대 응용생물공학부의 명칭이 내년부터 변경된다. 지난 학기에 ‘다른 학과와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뒤 ‘논의’를 통해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부 내 교수들의 모든 논의가 끝날 때 까지, 그 과정 속에 ‘학생’은 없었다. 심지어 명칭을 변경이 완전히 결정된 뒤에도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지난해 생명과학기술학부가 직할학부 원상 복귀를 요구하며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농성했지만 ‘학생 요구’는 빠진 결론에 도달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보통 약자가 될 때 의견은 묵살 된다. 약자 의견을 묵살해도 비판받지 않는 사회, 묵살이 용인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모습이 이러한 데 학교에서라고 크게 다를 일이 있겠나. 별 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개인은 약자고, 약자의 의견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지난달 30일 세월호 특별법 3차 합의안도 마찬가지다.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야당판 참사’라고 비판하기도 했던 3차 합의안. 여전히 유가족 측이 바라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한 기소권과 수사권은 보장되지 않았다.

참 좋은 세상이다. 묵인과 무시가 이렇게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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