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 진도 주민 모두 끝나지 않는 고통

▲ 해무가 가득 낀 지난달 22일 아침, 유가족들은 여전히 실종자를 기다리고 있다.
지독한 해무였다. 지난달 22일 아침 8시 경. 해무에 갇힌 팽목항은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었다. 조도나 다른 섬으로 떠나려는 이들의 발목을 붙잡았고 그곳에 머물던 이들의 시야를 가렸다. 배들의 출항이 늦어지는 가운데 유가족 몇몇은 해무 속을 헤쳤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아침밥을 차리러 가는 길이었다. 유민아빠 김영오 씨가 제대로 된 세월호 특별법을 주장하며 40일 째 단식을 하다 건강 악화로 병원에 호송되던 날이기도 했다. 그곳의 바다도, 세월호 특별법도 모두 해무 속에 꽁꽁 숨어들었다.

나는 오늘도 내 딸을 부릅니다
바람이 불자 짠내가 났다. 방파제 난간을 가득 메운 노란 리본이 흔들렸고, 곳곳의 풍경이 청아하게 울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제발 돌아와 주세요’ 등 간절한 마음들이 수천 개의 노란리본에 녹아있었다. 출항 못한 배들이 내는 엔진소리와 스님의 목탁소리도 섞여들었다.

그곳엔 지나가다 들른 사람도 있었고, 부러 찾는 이들도 있었다. 리본에 적힌 글을 읽으며 눈을 쓸었고 어떤 이는 노래를 하며, 또 다른 이는 피리를 불며 아픈 속을 달랬다. 그렇게 그들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10명(단원고등학교 학생 5명, 선생님 2명, 일반인 3명)의 실종자들이 돌아오길 바랐다.  

“한 번만 더 불러줄게. 이젠 집에 가자 ○○아!”

이른 아침, 해무에 싸인 바다를 향해 아이들의 이름을 목 놓아 외치던 이들. 단원고 실종자 학생 2명의 가족들이었다. 그들은 배가 고플 아이들을 위해 방파제 위 난간에 밥상을 차렸다. “이 소리 듣고 오는 길 잃지 말라”며 풍경을 흔들었고, 난간을 쳐 탕탕 소리도 냈다. 가족들은 20분 가까이 방파제 위에 머물며 한탄과, 애원과, 고함과 눈물로 자식들을 불렀다. 여전히 그들은 사고 초기에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궁금해 했고, 어김없이 절망했다.

“그만 속 썩이자. 응? 아저씨들이 구하러 갔으니까 이제 그만 자고 제발 나와줘…”

“오늘이 마지막이길” 바라며 가족들은 돌아섰다. 그들의 뒷모습이 해무 속으로 걷혀갔다.

“내일 또 올게.” 가족 중 누군가 가져다 놓은 덜 핀 노란 국화화분 하나가 그곳에 남았다.

“우리도 살아야지” 속 타는 마음들
늦은 장마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21일. 서울은 호우특보가 내렸지만 진도의 하늘은 개여 있었다. 참사 9일 째인 지난 4월 24일 찾았던 진도. 이후 100일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찾은 그곳은 꽤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진도 체육관이요.”

체육관에 가달라는 말에 택시 기사는 난색을 했다.

“가봤자 뭣도 없어. 거기 있는 몇몇 가족들도 팽목항으로 가믄 쓰겄는디….”

택시 기사의 “세월호 이후 진도의 피해가 너무 심하다”는 하소연을 들으며 도착한 체육관. 실종자 가족을 포함해 10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곳의 적막은 여전했다. 참사 초기 600여 명의 유가족, 2,000여명의 봉사자 등 사람으로 꽉 차 있던 곳이 어느새 텅 비었다. 체육관과 팽목항에 10 가족이 남았고, 봉사자들은 하루 평균 20명 안팎. 체육관과 팽목항에서 급식봉사를 하는 자원봉사 천막은 이제 2~3곳이 남았고, 20분마다 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던 셔틀버스는 하루 7번, 2시간 간격으로 줄었다.

참사 128일째(지난달 21일 기준). 긴 기다림에 지쳤을까? 진도에서 나고 자랐다는 ㄱ 씨(71)는 “하루아침에 자식 잃은 부모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억장이 무너진다”면서도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진도 사람들한테는 먹고 사는 문제가 걸린 일이다 보니 힘들어 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만 멈췄으면 한다”고 전했다. 내년에 있을 전남도민체전을 준비(체육관 공사 등)도 해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고도 했다. 지난 7월부터 팽목항에서 지내는 백창기 씨는 “자칫하면 유가족들에게 화살이 돌아올 수 있다며 이제는 유가족들이 이성적 판단이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떄도, 참사 이후 수습 과정에서도 자꾸만 잡음을 만들어내는 정부 덕에 2014년 4월 16일, 그날로부터 시작된 고통은 대한민국 전체를 조금씩 가라앉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5월 이후 다시 한 번 진도를 찾은 자원봉사자 이동현 씨(29)는 “진도 주민들, 유가족 모두 안타깝다. 정부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이 지경까지 왔다”며 “정부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도와야한다”고 전했다. 

▲ 유가족들이 놓고 간 실종자 자녀들을 위한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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