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장유진 기자
삽화=장유진 기자

미학이란 미에 관한 이론이나 예술 일반에 관한 성찰로 간주된다. 예술(art)은 라틴어 아르스(ars), 나아가 희랍어 테크네(techn?)에서 유래했다. 주지하다시피 이 단어는 예술을 뜻하기 이전에 기예를 뜻한다. 자크 랑시에르는 이를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 경험 형태를 가리키는 관념으로서 예술은 서구에서 18세기 말 이후에야 존재했다. 그 이전에는 온갖 종류의 기예나 제작 방식이 있었으나 그것들은 사회적 조건들의 나눔 속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매겨졌다. 기예들 중 어떤 것은 자유학예로, 어떤 것은 공예로 간주되는 식이다. 이런 위계가 무너지고 나서야 예술이 생겨났다. 여기까지는 예술사 교과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얘기이다. 랑시에르의 독창성은 이를 발전시켜나가는 방식에 있다. 그에 따르면 예술은 예술이나 미에 대한 개념이 갑자기 생겨나서가 아니라 감각적 경험 형태, 지각하고 촉발되는 방식이 변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어떤 것을 지각하는 형식과 그것이 이런 저런 예술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판단 형식(‘예술의 식별 체제’)이 없다면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학은 특정 분과학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 지각 방식과 이해가능성의 형식과 관련된 짜임 혹은 편성이다.

랑시에르는 세 가지 식별 체제를 구분한다. 첫째, 이미지들의 윤리적 체제. 여기서는 그 자체로서 개별화된 예술은 없고 원본을 닮은 이미지들을 만들어내는 기예들, 제작 방식들만 있다. 그 이미지는 개인과 집단의 존재방식에 미치는 효과(이미지화된 신성은 진정한 신성인가? 그것은 올바로 이미지화되었는가?)와 관련해서 사고된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그림이나 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떠올려보라. 둘째, 기예들의 재현적 체제. 여기서도 예술/기예는 여전히 모방적이지만 질료에 형상을 부과하는 활동으로 간주된다. 작품은 나름의 규칙, 즉 장르들 사이의 위계, 주제에 대한 표현의 적합성 등을 따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주장하듯 시는 행위하는 인간들을 모방하는 허구로서 줄거리를 사슬처럼 연결하는 것이다. 이는 일상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순차적으로 진술하는 이야기와는 구분된다. 이처럼 고귀한 행동 방식과 범속한 행동 방식은 구분되며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에 따라 표현 방식이나 장르들이 구분된다. 셋째, 예술들의 미학적 체제. 여기서 예술은 재현 체제의 규칙들, 즉 주제 및 장르의 모든 위계를 무너뜨리는 한에서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예술은 제작 방식들 가운데 하나로서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산물들에 고유한 감각적 존재 양식에 의해 식별된다. 예를 들어 근대 회화 혁명은 화가가 자연을 그대로 모사하거나 위인의 행적을 기록하기를 그치고 자신의 붓놀림과 그림의 재료를 전면에 드러내면서 시작됐다.

이 체제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맺을까? 공통 세계의 구조를 짓는 가시성과 이해가능성이 한 체제에서 다른 체제로 어떻게 변형될까? 패러다임처럼 하나의 체제에서 다른 체제로 단절하며 넘어가는 것일까? 예술의 식별 체제는 역사적으로 구성된 지각 및 이해가능성의 체제임에는 분명하지만, 이전의 지배 체제가 폐지되고 다른 체제가 완전히 새로 출현하는 시대 구분과는 무관하다. 이점에서 랑시에르는 20세기 미술사 서술을 풍미했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등과 같은 범주들과 거리를 둔다.

로마 국립 박물관 루도비시 콜렉션의 주노 여신의 두상을 보자. 그것은 단순히 주노 여신을 옳게 모사한 것일 수도 있고, 장인이 규칙에 부합하게 원재료에 형상을 부여해 만든 재현물일 수도 있으며, 조각상의 무사심한 표정 덕에 목적과 수단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유희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 마디로 동일한 작품이 각 체제에 따라 상이하게 보일 수 있는 셈이다. 그리고 19세기에 영화의 탄생은 카메라와 필름과 같은 장치의 발명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 아니라 무차별한 주제, 밀착 포커스, 디테일과 어조의 우위와 같은 리얼리즘 소설의 방식에 의해 가능했으며, 그런 한에서 미학적 체제의 예술로서의 특징을 보여준다. 하지만 헐리우드식 장르 영화에서 행위들의 연쇄를 만드는 서사 방식은 철저히 고전적 재현 체계를 따른다. 이처럼 영화는 모순되는 두 가지 시학을 결합하고 있다.

이렇게 식별된 예술 또는 미학의 정치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지난번에 다루었던 ‘정치의 미학’과 동일한 것인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문학의 정치’로 우회해보자. 19세기 노동자들은 ‘문학적 동물’로서 인간이 지닌 평등한 지적 능력 및 언어 능력에 근거해 가시성을 요구하면서 공통의 출현 영역에 들어가고자 했다. 정치가 미학적 사안인 까닭은 그것이 자리와 시간, 말과 침묵,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의 나눔을 다시 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누구나 작가나 독자가 될 수 있고, 모든 주제들이 동등해지고, 모든 표현이 가능해진다. 랑시에르는 이를 ‘문학성’이라고 부르며, 이 문학성 덕분에 19세기에 ‘문학’이 출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문학은 글로 쓰인 모든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장르와 각 장르에 완벽히 부합하는 표현 수단들의 체계인 미문(Belles-Lettres)에 맞서 생겨난 문학은 평범한 삶의 비천한 세부 사항들을 정제된 문체로 다루면서 시작한다. 미학적 예술 체제에서는 집단적 말, 익명의 거대한 목소리의 무차별이 전면에 등장하고, 내용과 형식 사이에 필연적 관계가 사라진다. 그리하여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엠마 보바리』, 『부바르와 페퀴셰』 같은 소설은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현실 참여적 작품이기는커녕 어떤 메시지도 담지 않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지향하며 문체에 탐닉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대 비평가들로부터 ‘문학에서의 민주주의’라는 비난을 받았다.

문학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플로베르는 ‘문학성’을 대표하는 인물인 엠마 보바리를 죽였고, 부바르와 페퀴셰의 독서를 실패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소설은 인간 동물의 ‘정당성 없는’ 문학성 덕분에 가능했지만, 그것을 죽음이나 실패로 단죄함으로써 하나의 예술로서 자신의 고유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대신 문학은 골동품 상점 진열대에 전시된 오브제들이나 모든 것이 쓸려 들어가는 하수구를 통해 시대, 사회, 운명의 징후를 밝히는 과제를 떠맡는다. 사회의 심층 속으로 여행하고 사물들의 신체에 쓰인 말들, 그 속의 진리들을 밝힌다는 점에서 랑시에르는 이를 ‘문학의 (메타)정치’라고 부른다. 정치의 미학이란 정치적 주체들이 가시성의 장 위에서 불일치와 불화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반면 미학의 정치, 예술의 정치란 정치적 주체들의 활동 무대인 외형?형태의 질서로부터 그 하부의 감각의 질서로 내려간 것이다.

문자에 매달린 인간들에서 사물들/신체들의 표면과 심층을 지나 문학은 심지어 먼지 알갱이, 외투 속에 살고 있는 벼룩에 이르는 미시 사건들로 나아간다. 사물들의 순수한 강도에까지 다가가는 이 ‘분자적 민주주의’에 이르면 정치적 주체화는 불가능하고 전(前)인간적인 분자적 개체성이 있을 뿐이다. 랑시에르는 문학이라는 특정한 글쓰기 체제 안에서 이렇게 세 가지, ‘문자적 민주주의/문학성’, ‘말없는 사물들의 민주주의’, ‘분자적 민주주의’가 충돌하고 있다고 말한다. 문학의 정치란 이 갈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예술에 대한 세 가지 식별 체제는 시대 구분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며 갈등하는 것이고, 하나의 식별 체제 내에서도 여러 정치들이 공존하며 갈등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드러난 ‘미학의 정치’란 ‘정치의 미학’에 준거하는 것이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분리된다. 그리고 우리는 정치의 미학에서 강조되었던 감각적인 것의 나눔을 재편성하면서 등장하는 정치적 주체화와는 구분되는, 말하는 주체가 아니라 말없지만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사물이나 모든 의미작용에서 해방되어 무차별적으로 떠도는 분자들에 이르러 탈주체화를 완수하는 미학의 정치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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