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창비/ 213쪽/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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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그날 죽거나 사라진 이들이 세상의 기록보다, 세간의 기억보다 더 많을 지도 모른다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리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모교 교정을 거닐 때마다 학교 어딘가에 주인 모를 백골들이 묻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사라진 사람들이 웃고 노는 잔디밭이며 언덕에 검푸른 얼굴로 누워 있는 상상.

5월 광주를 복기하는 영화, 소설, 시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만큼 어떤 이들에게는 그날의 이야기들이 이제 좀 미지근한 일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이들에게 그날의 이야기가 여전히 조심스럽고,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할 만큼 분기탱천할 일일 것입니다.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진실은 모호하고 나아진 것은 많지 않아 보이는 세상입니다. 상처에는 결국 세월이 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이라는 말마저도 쉽게 쓸 수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며 ‘여전히’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의지는 그날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을까요? 어쩌면 여전히 변하지 않은 시간 위를 걷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 길의 풍경에 널브러진 많은 이들의 죽음, 지금도 진행 중인 죽음을 외면하는 한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라는 말을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유효한 그날을 그린 소설을 권해드리려 합니다. 겉장을 넘기기 전, 방금 물에 들어갔다 온 잠수부처럼 심호흡을 힘겹게 했습니다. 읽으며 멈추고 책장에 얼굴을 파묻기도 했습니다. 그때마다 검푸른 얼굴들이 불쑥, 책 속에서도 책 밖에서도 세월이 흘렀다는데 세상은 여전한 것 같다는 생각에 여러 번 아팠습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 찾아온 그 소년이, 여전히 제 방에 머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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