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호미, 삽, 칼, 드라이버, 망치, 뺀치, 그리고 양동이, 물뿌리개, 연탄난로, 디지털 키, 도어록 등 온갖 철물들을 자신의 전 생애처럼 양지쪽에 널어놓은 김 씨. 평생 장바닥 떠돌아다녔지만, 결코 자신을 다 드러내놓은 건 아니라며 너무 밝은 대낮을 돌아앉아 있다. 시장 한 구석에서 독 파는 심 씨가 심심할 때마다 독 안에다 제 속 비워내는 목소리 우렁우렁거리는 걸 참 푸짐한 소리라며, 그래도 자신의 속까지 다 게워내어 팔아선 안 된다며, 파장 때까지 제 그늘 밟고 앉아 낫처럼 허리 구부린 채 녹슨 철물들처럼 불콰하게 버틴다. 내가 펼쳐놓은 김 씨의 철물들 가운데서 햇볕에 잘 익어 참 따뜻한 것 하나를 골라낼 때까지. 

 

이하석 시인

1948년 경북 고령 출생. 1971년 『현대시학』 추천으로 등단, 시집 『투명한 속』 『김씨의 옆얼굴』 『우리 낯선 사람들』 『측백나무 울타리』 『금요일엔 먼데를 본다』 『녹』 『것들』 등을 냈다. 김수영문학상, 도천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대구시문화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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