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신문기자 4년차에 편집장을 했었다. 편집장의 임기를 마친 뒤, 나는 제주도로 떠나겠다고 마음먹었다. 제주에 연고가 있는 것도, 제주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 나는 제주도에 가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곳을 그리워했다. 이곳에서의 삶이 부대낄 때면 제주도에 있는 나를 상상하곤 했다. 생각해야 할 것이 많은 날엔 더욱 그랬다. 귤 농장에 귤을 따는 알바를 해볼까, 말 농장에 말똥을 치우는 노예가 될까, 아님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옥수수를 뜯으며 글을 써볼까. 그것도 아님, 하루 종일 하염없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까. 어찌됐든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부풀었다.

그런데 나는 신문사 생활을 마치고도 바로 제주도로 떠나지 못했다. 이것저것, 다음 계획을 세우느라 바빴다. 어느 날 깨달았다. 나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조급한 인생을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그래서 그날로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제주로 가는 비행기는 3일 뒤 광주에서 출발이었다. 갑작스레 떠난 시기가 봄날이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 떠나기 하루 전 캐리어에 담아 둔 내 짐을 모두 꺼내고 배낭에 간단한 것들만 옮겼다. 2013년 5월 28일, 나는 제주도로 떠났다.

혼자서, 그것도 돌아올 기약이 분명치 않은 여행을 떠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언제, 어떻게 돌아오게 될지 모르는 여행을 하고 싶었던 이유는 외롭기 위해서였다. 지독히도 외로운 시간 속에서 나는 나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미래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싶었다. 외로움을 고독으로 승화시키는 나만의 방법 또한 얻고 싶었다.

▲ 제주도 용머리 오름의 풍경을 기자가 핸드폰 카메라 속에 담고 있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을 지나는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따로 계획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몸이 가는대로 흘러가자는 것이 계획이라면 계획이었다. 한참을 달렸을까. 내가 내린 곳은 월령리라는 곳이었다. 월령리는 제주도의 서쪽에 위치해 있고, 나는 그곳을 기점으로 동쪽으로 걸었다. 바다, 바람, 구멍 뚫린 돌담을 렌즈 속에 담으며 걸었다. 나의 제주도 걷기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해가 뜨면 걸었고, 해가 지면 근처 숙소를 찾았다. 숙소에서 내가 한 일은 씻고, 먹고, 글을 쓰는 일이었다. 글을 쓴 뒤에는 내일 내가 갈 방향이 어디인지 지도로 확인했다.

4일 정도 지났을 때, 나는 길을 잃었다. 제주도 가장자리를 따라 걷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중간에는 산도 있었고, 오름도 있었다. 산을 타고 마을을 지날 때, 갈림길을 만났다. 어느 쪽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결국 그냥 걸었다. 왠지 이쪽이 맞을 것 같다는 방향으로 걸었다. 또 길을 잃었다. 맞게 가고 있는 것인지, 여긴 어디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러다 마주친 피켓 하나. ‘멧돼지 조심’. 그때부터 길게 자란 풀을 일회용 비닐 우산으로 가르며 크게 혼잣말했다. “난 혼자야, 그러니 혼자인 나에게 멧돼지인 네가 달려드는 것은 비겁해. 왜냐하면 넌 강하니까. 넌 최고야! 그러니 절대 내게 오지마!”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도 몇 번 있었다. 걷고 또 걸어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걸었을까. 드디어 도로가 보였고 멀리서 파랑색 용달차가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엄지를 세우고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었다고 하여, 낯선 사람의 차를 얻어 타려고 하는 일은 위험한 행동이라고 책에서도 읽고, 어디 기사에서도 읽고, 친구들의 대화 속에서도 배운 적이 있었던 것 같지만, 다 필요 없었다. 일단, 용달차를 믿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행히도 용달차 할아버지는 좋은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근처 게스트하우스까지 나를 태워다주셨다.

숙소에 앉아 그날의 걷기를 회상하며 고민했다. ‘돌아갈까. 왜 난 여기에 있지? 내일이라도 당장 돌아갈까.’ ‘이만하면 됐다’고 합리화 하고 싶었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나는 결국 걷기를 시작했다. 아직 나는 말 농장에도 찾아가지 못했고,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길을 잃은 기억으로 걷는 게 두려운 것이라면, 그래서 앞으로 가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뒤로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두렵지도 않았다. 대신 외로워졌다. 지독히도 외로운 시간들이 있었다. “난 자유야”를 외치며 싱글벙글 웃는 일도 없었다. 나는 차분해졌다. 차분해진 나는 더 여유로워졌다. 넓어지고 깊어지는 순간들이었다.

나는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았다(중간 중간 우도와 마라도도 돌았다). 처음 걷는 여행을 하기로 다짐했던 협재 바다에 다시 돌아왔을 때, 뭔가 몽글몽글한 것이 배 밑에서 간질거렸다. 한라산에 오르기로 한 새벽, 할머니의 비보를 듣고 나는 광주로 돌아왔다. 비행기 창밖으로 제주도가 눈에서 멀어졌다. 그날로 나의 제주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지금도 제주에 있던 날들을 자주 떠올린다. 묵묵히 걷고 쉬기를 반복했던, 오롯한 제주에서의 내 모습이 그립다. 그곳에서 나는, 몰랐던 새로운 나를 발견하기도 했고, 변한 줄만 알았던 예전의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로, 급작스레 제주도와 이별한 나는 그곳에 여지를 남겨두고 왔다. 내 영혼의 반의 반쯤은 아마 아직도 제주 어딘가를 떠돌고 다닐는지도 모른다. 이제 다시 제주도로 떠나는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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