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터미널까지 가는 길목 지하로 뻗은 층계 다리 잃은
여자 하나 주저앉아 있었다 얼굴을 가린
그녀 옆에 놓인 나이롱 바구니들은 침착했다
그녀는 구걸은 하지 않았지만 이따금
행인들 걸음에 부드러운 시선이 엉겨 붙었다
문득 그녀가 살아야 한다고 말한 것 같은데
아니야, 그녀는 사랑한다고 말했어
다리를 왜 잘랐을까 무시무시한 연민과
억측들이 쌓인다 여자가 입을 오므린다 그녀는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언어들로 궁색해진다
여인과 여자는 발음이 다르지
그때 그녀는 여자였던가 여인이었나
그녀를 가로지르는 건 개념이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는 하나의 당위였을 뿐
터미널은 항상 사이에 있지 온갖
사람들과 공간들의 간극에 반드시 터미널은 있지
때로는 떠나기도 하고 반드시 향해야만 하는
어쩌면 자유의 동의어가 터미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하자면 산다는 일과 죽는다는 사실의 경계에도 있는 의문들
물러서야 할지 한 걸음 더 갈지는 선택의 문제겠지만
 

쉼 없이 오므리곤 하던 그녀의 입술은 어쩌면
너와 내가 닿을 수 없는 터미널이었어
그녀는 걷기보다 날고 싶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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