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중항쟁부터 세월호 참사까지…“예술가는 시장 바닥에 있어야”

▲ 홍성담 화백은 <전대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쓰레기더미 위에 뿌리를 내리고 예쁜 꽃을 피우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의 뒤편으로 야스쿠니신사를 비판한 작품인 ‘봉선화 연작-4’가 보인다.

어두울수록 빛나는 홍성담 화백(59).
홍 화백의 붓은 어둠을 쓸어 담는다. 그는 늘 가장 고통스러운 자리인 현장에 있었다. 80년에는 5·18민중항쟁(5·18) 현장에 있었고 세월호 참사 때는 진도로 내려갔다. 예술가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홍 화백의 예술가로서의 신념은 어린 시절의 기억에 근거한다. 고향 신안 하의도에서 본 마을 공동체의 기억이 그로 하여금 대한민국의 민낯을 가까이서 보게 했다. 그는 혼을 위로하고자 씻김굿을 하던 무당의 모습에서 사람을 치유하는 예술인의 역할을 찾았다.
<전대신문>이 지난 14일 경기도 안산, 야스쿠니 연작 작업이 한창인 홍 화백의 작업실을 찾아 80년 5월의 기억과 예술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가장 맛있는 담배 한 대
1979년, 대학을 갓 졸업한 작가 7~8명은 유신정권에 투쟁할 것을 선언하며 ‘광주 자유 미술인회’를 만들었다. 홍 화백도 그중 한명이었다. 80년 봄,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5·18이 일어나자 광주야학, 극단 광대패와 함께 문화선전대로 활동했다. 그는 “대자보 쓰는 손이 부족해 그림 그릴 틈도 없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도청 마지막 전투, 1980년 5월 27일 윤상원 열사와 피웠던 마지막 담배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당시 문화선전대는 총을 반납하고 집에 돌려보내졌다. 홍 화백은 “마지막으로 상원이 형이 보고싶었다”며 “담배를 찾는 형을 위해 골목을 뒤져 꽁초 6개와 신문지 조각을 주워와 담배를 말았다”고 말했다. 고립됐던 광주는 먹을 것은 서로 나누어 단 한사람도 굶지 않았지만 담배와 실탄은 부족했다.

“담배 2대를 말아서 상원이 형과 도청 정문앞 담에 쭈그려 앉아 한 대씩 피웠는데, 얼마나 맛있던지….”

담배를 피우고 돌아가던 홍 화백은 총을 반납할 때 챙겨놓은 실탄이 생각나 되돌아갔다. 그는 윤상원 열사에게 주머니에 넣고 다녀 닳아져 광이나는 총알을 내밀었다.
“형은 석양에 빛나는 실탄 세발을 손에 꼭 쥐었다. 형은 ‘담아,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총알이 이렇게도 따뜻하니?’라는 말을 남기고 뒤돌아갔다. 그날 자정 광주 외곽부터 총소리가 들리더니 새벽 4시쯤 도청쪽에서 우박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 하나가 상원이형의 심장에 박혔다.”

친한 형의 죽음. 홍 화백은 피의 바다에서 동이 터오는 아침을 바라보며 절망이 아닌 희망을 보았다. 그는 “먼 데서 뿌옇게 동이 터오는 아침을 바라보며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다”며 “‘우리가 원했던 세상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판화 70여점에 그 새벽을 담았다. 1980년 7월 5·18 민중항쟁 희생자를 기리는 진혼굿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고 11월에는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민중화가가 됐다. 이러한 저항적 행동들은 그를 불온작가로 찍히게 했다. 국가기관의 사찰이 시작됐고 그림을 뺏기기도했다. 그는 “작가로서 치욕스러웠다”며 “활동하고 수배가 내려져 도망다니기를 반복했다”고 전했다.

“‘골든타임'은 지났다"
홍 화백에게 80년 독재의 시절은 현재진행형이다. 유신의 딸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대선때 박근혜 후보가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출산하는 그림을 그려 이슈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림 제목은 ‘골든타임-닥터 최인혁,갓 태어난 각하에게 거수경례하다’였다.

“박근혜를 지지하고 박정희에게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을 보고 ‘우리나라에 망조가 들었구나’ 했다. 국가 존망의 위기라고 생각해 죽기 직전의 ‘골든타임’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단원고와 15분 거리인 홍 화백의 작업실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그는 이번에 또 중요한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탄식했다. “내 고향 뒷바다에서 아이들이 죽었다. 사고가 일어난 다음날 바로 진도로 내려갔다. 80년 5월의 피바다 속에서도 보았던 희망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곳엔 절망뿐이었다.”
홍 화백은 거짓말을 반복하는 현 정권에 대한 비판도 쏟아냈다.

“단언컨대 이 정부는 절대 무능하지 않다. 댓글 부정선거도 덮고 간첩 조작도 덮은 대단히 유능한 정부다. 자기들 정권 보존에만 유능한 극히 위험한 정부다. 곧 저 위험한 정부를 끌어내리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것이다.”

홍 화백은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우리 나라의 예술가와 정부의 경직된 예술관을 보고 어지러운 시대에 예술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예술가들의 편협함을 지적하며 “예술가가 아무리 웃기는 희극 축제를 한다했더라도 이 사건에서 희생된 영혼을 달래고 국민을 위로하는 태도로 접근하겠다는 창조적 기획력의 결여를 보여줬다”며 안타까워했다.

홍 화백은 “지금 유가족이 가장 원하는 것은 진실규명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책임자를 처벌하고 진상규명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보여야 한다”며 “위로를 뛰어넘어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하는게 진정한 위로라는 것을 알아야한다”고 설명했다.

‘젊음’은 광주의 희망
가장 뜨거운 젊은 시절을 광주에서 보낸 홍 화백은 광주의 새로운 희망을 기대하기도 했다. 홍 화백는 “부당한 권력이 만들어내는 억압적 정권은 끊임없이 국민들로부터 희망을 거두어낸다”며 “젊은이들이 희망을 포기하고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지배자들이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광주의 5월을 항상 자랑스러워 하는 그는 “민주화의 성지라는 곳에서 역대 단 한명도 ‘시민후보’를 낸 적이 없다. 일단 정치적 승리를 위해 민주당에 철저하게 정치적 노예가 된 것이다”라며 쓴소리를 했다.

대안도 내놓았다. “광주는 정권을 잡아서 민주화의 성지가 된 것이 아니다. 이제는 도시공동체가 직접 그 도시의 지도자를 키우는 지난한 과정, 또 그 지도자들이 모인 결사가 제대로 된 정당을 이루는 사회를 시민들이 만들어야한다. 광주가 전국에 모범답안을 보이는 것이 새누리당과 민주당으로 잘못 양분된 지역 분할에 의한 정당체제를 깰수 있는 답이다.”

청년세대의 역할도 강조했다. 일희일비 하지말고 장기적으로 광주를 이끌수 있는 소셜리더그룹을 만들어야한다는 것이다.

홍 화백은 “‘젊다’는 것은 오늘 잘못된 구렁텅이에 있더라도 내일 반듯한 지평선을 걸을 수 있는 무한한 자기변화 가능성과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면서 “요즘 젊은이들은 자본가들이 만든 컨텐츠로 소통하고 그들이 만든 옷을 입고, 화장하면서 자신이 개성있다고 생각한다”며 안타까워했다. 노예가 될수록 자기소외가 깊어지기 때문이다.

홍 화백은 “정치권력과 자본가들의 노예상태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한 절대 자기생각을 가질 수 없다”며 “대학생들이 공동체를 만들고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지역사회에 애정을 갖고 연구해 현대판 사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정신적 역량을 키워나가야한다”고 말했다.

“예술가는 시장 바닥 쓰레기 더미에 뿌리를 내리고 예쁜 꽃 한송이를 피워야 한다”는 홍 화백은 오늘도 ‘현장’에 있다.
 

 ▲ <전대신문>과 인터뷰 중인 홍성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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