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한명이 몸이 불편한 사학과 학생과 동행 취재를 하던 날, 진리관 1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연히 만났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지만 학생 이동이 많은 쉬는 시간인지라 이미 만원이었다. 제발 다음번에는 사람이 없기를 기대하며 또 한 대를 기다렸다. 그러나 역시 사람은 많았고, 기자와 그 학생이 탈 공간은 없었다. 필자는 엘리베이터를 탔고 차마 앞을 보는 게 민망했다. 사람 많은 두 대의 엘리베이터를 보며 사람들이 그 학생을 위해 내려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왜 내려서 양보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엘리베이터를 탄 필자 또한 부끄러웠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한다고 해도 그 학생의 마음은 편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에게 으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배려들이 오히려 불편하게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장애인이 넘어져 있는 경우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기 보다는, “도움이 필요하세요?”라는 질문이 먼저여야 한다던 말과 한 임산부의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해주는데 차라리 못 본 척 해주기를 바랐다. 배려를 받아도 마음이 불편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장애인에게 관심이 없기 보다는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다만 도덕 교과 시간에 배운 의무감 섞인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장애인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배려는 ‘나’ 편하자고 하는 배려일 뿐이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배워요. 괜한 의무감도 들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면 되는 건데 말이죠.”
취재 차 만난, 장애를 소재로 만화를 그리는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실제로 저 말을 경험해보니 괜한 편견 속에 살고 있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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