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같은 쉬는 시간, “진리관 입구에 경사로 생겼으면”

 
내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 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지체장애 1급인 이승현 씨(사학·14)에게는 참 어려운 일이다. 4월 10일 하루 동안 <전대신문>이 이승현 씨와 동행했다.

그의 아침은 남들보다 빠르게 시작된다.

1교시 시작 30분 전, 인문대 1호관으로 들어가기 위해 그는 작은 턱을 지나야한다. 중앙 출입문 앞에 위치한 11cm 높이의 작은 턱이지만 그에겐 잠시 숨을 골라야하는 곳이다.

가장 먼저 강의실에 들어가 불을 켠 이 씨는 “남들보다 기동력이 부족하다”며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그가 걷는데 도움을 주는 보행보조기(워커)는 한편에 둔다. 워커는 6살 때부터 그의 다리가 되어주었다. 그의 키가 클 때마다 워커도 함께 커졌다.

워커의 도움 없이 이동이 힘든 이 씨는 가까이에 있는 인문대와 진리관, 사회대 별관에서만 수업을 듣는다. 인문대 1호관의 경우 엘리베이터가 없어 2층에 위치한 교수 연구실에 갈 때는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는 “친구에게 업혀서 올라갈 때면 자존심이 상하고 미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법령에 따르면 ‘장애인 편의시설기준’에는 ‘주 출입구 높이차이 제거’와 ‘승강기 설치’의무를 명시하고 있지만 이처럼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처럼 보행에 불편을 겪고 있는 우리 대학 학생은, 총 40명의 장애인 학생 중 13명(시각, 청각, 지체, 뇌병변 장애)이다. 본부 관계자는 “인문대 1호관은 문화유적지이기도 하고 복층구조로 되어있어 승강기 설치가 힘들다”며 “리프트를 놓기에도 공간이 협소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수업이 끝나고 친구 김동현 씨(사학·14)와 함께 인문대 3호관에 있는 학생회실로 향했다. 일반 학생들은 아무렇지 않게 내려가는 16cm의 턱을 내려가기 위해 그는 세 네번은 멈춰야한다. 그가 걸을 때면 주변의 여러시선이 따라붙는다. 그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몸의 불편함이 아닌 사람들의 시선이다. 그는 “원숭이 쳐다보듯 유심히 훑어보는 시선이 가장 불편하다”며 “나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학회실에 도착한 그는 활달해졌다. MT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갓 입학한 신입생 티가 났다. 그는 소박한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입학한지 한달이 지났지만 제대로 캠퍼스를 구경해본적은 없다. 날을 잡아서 캠퍼스 투어를 해보고 싶다. 법대 도서관과 생활관 식당도 가보고 싶다.”

잠깐의 휴식을 뒤로하고 이 씨는 4교시 수업이 있는 진리관으로 향했다. 입구에 경사로가 있는 길로 가기위해 1층으로 향하지만 혼자 가기에는 위험천만하다. 김 씨는 “승현이가 평소 웬만하면 남에게 도움 받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진리관에 갈때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구한다”며 “내리막길 경사가 심해 가속이 붙어 위험하다”고 걱정했다. 그에게 쉬는 시간은 전쟁이다. 이날도 이씨는 4교시 수업을 듣기 위해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위험하게 내려갔다. 진리관 입구 안으로 들어선 후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10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탈 수 있었다. 학생이 꽉 차 엘리베이터 세 번을 그냥 보내야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업이 시작하는 한시 반쯤이 되면 사람이 많아서 4번을 기다리기도 한다”며 “엘리베이터가 있어도 이용할 수가 없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어 “위험한 내리막길을 내려올 필요 없이 2층 입구에도 경사로가 설치돼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씨는 중앙도서관에 갈 때도 친구들과 다른 문을 사용해야 한다. 인문대에서 홍도로 가는 문에서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장애인 전용 문이 있다. 남의 집에 놀러갔을 때처럼 벨을 누르면 도서관 직원이 나와 문을 열어준다. 일반 학생들이 다니는 통로는 감지기기의 폭이 좁아 그의 워커가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과 장애학생지원담당 윤일 씨는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고, 임신하지 않고, 늙지 않는 세상은 없다”며 “같이 가는 길이기 때문에 조화롭게 굴러가는 사회를 위해 필요한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씨에게는 수업 선택도 책을 읽으러 가는 것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하굣길 그를 데리러온 어머니는 떠나기 전 “누구에게나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며 “인간의 기본권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학교의 시설개선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승현이에게 쉬는시간 1분은 피같은 1분이다”라며 “더 건강한 사람들의 배려가 필요하다”는 말을 남겼다.

아침 여덟시 반부터 저녁 여섯시 반까지 이 씨의 뒤에서 걸으며 수십 명의 학생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 눈빛들이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가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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