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었던 제 2차세계대전이 종식된 지 이제 70주년이 임박하고, 냉전체제의 한 축이었던 구소련의 개혁과 해체의 서막을 알렸던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선언된 지 3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는 최근 흑해 연안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1991년 구소련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계 주민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크림자치공화국은 주민 투표를 거쳐 러시아와의 합병을 선언하였으며 러시아 정부는 이에 호응하여 지난 3월 18일 즉각적으로 합병조약에 서명하였다. 이 사건은 우크라이나 내부 친서유럽 성향의 우크라이나인과 친러시아 성향의 러시아인의 해묵은 민족 갈등과 이 지역의 지하자원을 둘러싼 주변 국가들의 이해관계, 그리고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크림반도의 부동향을 확보하려는 러시아 흑해 함대의 군사적 전략과 미국의 대 유럽 전략 등이 상충한 결과였다. 지난 2월 러시아군이 일체의 충돌 없이 크림반도에 진압하고 자치의회가 주도하는 주민투표의 형식을 통해 현상적으로는 유혈사태 없이 속결었지만, 이 기이한 평화적(?) 합병 과정을 목도하면서 자원민족주의와 '대 러시아'를 표방하는 러시아의 푸틴 정부가 유럽의 새로운 분쟁을 야기시키지 않을까 전세계는 우려섞인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한편 이번 주 타전된 또 하나의 외신은 전혀 다른 차원에서 우리를 경탄케 하고 있다. 4월 8일 히긴스 아일랜드 대통령이 영국을 국빈방문하면서 길게는 800년, 짧게는 200여년간 지속되었던 갈등과  반목을 종식하고 두 나라가 화해할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를 맞게 되었다. 잉글랜드 섬과 아일랜드 섬으로 가장 각깝게 공종하고 있는 양국은 유럽대륙과 격리되어 또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면서 지난 12세기 이래 영토를 둘러싼 지배와 독립, 종교를 둘러싼 대립과 유혈 충돌을 반복하였기에 영원히 그 접점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견원지간이었다. 그러나 양국은 지난 30여년간 정치, 경제, 문화, 외교 등 다각적으로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관계 개선을 도모하였으며 양보와 신뢰를 구축하면서 마침내 화해의 자리를 마련하는 '기적'을 이루게 되었다.

최근 벌어진 대조적인 두 사건을 지켜보며 우리는 적잖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분명 우크라이나는 오랫동안 구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갈망했으며 그 독립의 쟁취는 자신들의 온전한 주권 회복과 역사 수립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그러나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맞이한 신생독립국은 불과 20여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경우는 화해와 통합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 개선을 위한 당사국들이 실질적인 노력으로 가능함을 웅변하고 있다. 양국의 지도자들은 다작적인 외교라인을 통해 끊임없이 대화와 소통을 하였으며, 오늘날 영국 국민의 약 4분의 1이 아일랜드계일 정도로 두 나라의 국민들은 경제,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민간 교류를 통해 동질감을 회복하고 우호 관계를 제고해 왔다.

남북한이 분단된 지 60여년, 우리 모든 국민은 물론 통일을 열망하고 있으며, 그 숙원이 이루어질 날도 멀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다만 '통일이 되면 곧 대박'이라는 과정 없는 당위보다 때론 시간이 필요하더라도 양 체데 간에 충분한 준비와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어 '대박이 될 수 있는 통일'을 이루는 것이 보다 바람직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전히 힘의 논리가 우선하는 냉엄한 국제사회에서 준비없는 조급한 선택이 또 다른 우크리이나 사태를 초래할 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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