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대학 생활의 절반이었다.”
정양주 씨(국어국문·80)의 대학생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용봉문학회’에서의 활동이었다. 용봉문학회는 1976년 만들어진 우리 대학 대표 문학동아리다. 1981년 등단한 시인 곽재구(국어국문·76)와 소설가 임철우(영어영문·76)를 비롯해 많은 문학인을 배출했지만 회원 수 부족 등을 이유로 2011년 36년의 역사는 끊기게 됐다.

정 씨는 “당시 용봉문학회는 일주일간 교내에 포스터 10장을 붙이면 100여명의 학생들이 OT(Orientation)때 몰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며 “요즘처럼 학생들이 문학에 무관심한 상황에서 용봉문학회가 그동안 버틴게 용하다”며 아쉬워했다.

지금은 대학생들이 할 수 있는 활동들이 다양해진 만큼 동아리의 비중은 축소됐으나 과거 대학생들의 경우 전체 학생의 절반 이상이 동아리활동을 할 정도로 동아리의 비중이 컸다. 정 씨는 “상대적으로 취업 걱정이 덜 했던 시기의  대학생은 지성인이라는 자부심으로 내면을 가꾸고 다른 낭만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이후 동아리들의 운동권 색채가 강해지며 특색을 잃어가기도 했다. 정 씨는 “83년에는 동아리를 운동권 세력의 인력제공장소로 삼자는 ‘동아리 해체운동’도 있었다”며 “동아리의 순수한 특색을 잃어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서도 멀어졌다”고 말했다.

정 씨는 대학에서 학생들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문화와 예술이 약해지는 현실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요즘 학생들은 자본주의 사고방식이 강해 먹고사는 문제에 너무 집중한다”며 “못가질 것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사람을 이중으로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돌아보니 경제적 풍요의 차이보다는 ‘내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주위에 좋은 사람이 많은지, 내 삶을 얼마나 낭비하지 않았는지’가 중요하다”며 “이런 사람이 더 행복하게 늙어갈 수 있다”고 전했다.

정 씨는 “학생들이 동아리를 잘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혼자서 힘들게 경력을 만들어가기보다는 동아리를 세상과의 연결고리로 삼고 선배들에게 조언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른보다 친구에게 배우는 것이 더 많을 나이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기 세계를 넓혀야 한다”며 “동아리를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 기회, 내 삶을 더 풍성하게 할 자양분으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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