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남쪽의 섬 암태도에 들어섰을 때 기자들의 눈길을 끈 것은 특별히 없었다. 제주도 처럼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마라도 처럼 지리적 위치가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이름만 이상한 회색 같은 섬 암태도.

그곳은 80여년 전 일제에 대항한 활화산 같은 역사적인 소작쟁의가 일어났던 것이 거짓으로 느껴질 만큼 조용하고 평화로운 시골이었다. 다만 다른 섬에 비해 작은 섬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비석이 있다는 것만 다를 뿐. '암태도 농민항쟁 사적비' '의사 서태석 선생 추모비'라고 쓰여진 두 비석에는 치열하고도 감동적인 역사가 한 가득이다.

「승리를 자기들의 것으로 가지게 해서 자기들 힘에 자신을 갖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바로 이런 훈련과 자신감은 이 소작쟁의 하나가 이기고 지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암태도>;에 나오는 서태석 선생의 말이다. 그는 3·1 운동과 신간회 사건 관련자로 체포돼 징역살이를 하고 나와 농민들을 이끌어 <암태도>;의 소작쟁의를 일으킨 실제 인물이다. 위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제치하 10년을 지내오면서 일본이 소작농들에게 진정으로 앗아간 것은 바로 자신감이었다. 언제나 빼앗기는 자로서 일제에 굴복했던, 그래서 가슴마다 분노의 불덩이를 품고 살아야만 했던 소작농들에게 소작쟁의는 자신감의 회복이요, 고통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암태도 소작쟁의를 이끈 서태석 선생이 돌아가신 지도 4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암태도에는 비석 때문인지 아직도 그의 체취는 암태도에 흐른다. 서태석 선생의 후손 서재칙 씨(남·72)는 "고생스럽고 힘드신 말년을 지내셨지만 마을 어르신들께서 깍듯이 대접할 정도로 카리스마 있으신 분이셨다"며 "6·15 공동선언 이후 빨갱이로 몰렸었던 서태석 선생의 위신이 올라가 북한 초등학교 4학년 교과서에도 나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중·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를 보면 소작쟁의에 관한 내용은 두 세 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서씨는 "하지만 그 짧은 서술 속에 스며있는 암태도민들의 땀과 피, 그리고 눈물을 잊지 말고 농민 운동 최초의 전국단위 승리였던 암태도 소작쟁의를 가슴깊이 새겨야"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겉으로는 조용하고 평범하지만 속은 펄펄 끓는 시뻘건 용광로 같은 열정을 지닌 섬, 암태도. 배를 타고 멀어져 가는 섬은 또 다른 승리를 말해주고 있었다.

/전대신문 나현정dkdlel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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