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사람들, 머무르는 사람들. 그들 모두 뒷골목의 사람들이다.

뒷골목 자리마다 각각의 사연과 이야기, 역사까지 있다. 한쪽에 뿌려진 담배꽁초. 여러 사람이 덧칠을 해놓은 벽화. 50년 넘게 걸린 간판의 세월. 염색머리방. 옛 신동아 극장의 정취. 이번호 포토다큐는 바로 ‘뒷골목의 사람들’이다. 축축한 비가 내리던 지난 13일, 충장로 뒷골목을 찾았다.

건장한 할아버지가 셔터를 쭉 내린다. 잠깐 어디를 가는 모양이다. 할아버지는 ‘전남(벽금고전문)금고저울수리판매’ 간판의 주인이다. 간판에 적힌 전남이 ‘저남’으로 벽금고전문이 ‘벽금고전ㅁ’로 변할 때까지 같은 자리에 있었다. 골목길의 청소도 종종 도맡아 하는 ‘골목대장’이다. 할아버지는 “저 간판은 50년이 넘었어. 지금은 장사 안 해”라는 말을 남기고 급하게 발길을 돌렸다.

수선집 3곳이 나란히 보인다. 한 아주머니가 남편의 점심 도시락을 들고 가운데 수선집으로 들어간다. 이 골목에서 제일 오래된 수선집이다. 기자도 그 수선집을 골랐다. ‘가든수선’의 주인 원장윤 씨(62)는 수선집을 한지 20년이 넘었다고. 성실한 원씨는 수선집으르 딸 넷의 대학 4년을 뒷바라지했다. 아저씨는 “남은 건 골병뿐”이라는 농담을 던지고 호탕하게 웃는다.

수선집에서는 유리창 너머로 골목길이 훤히 보인다. 수선집 아저씨는 골목길의 역사를 그대로 지켜본 장본인으로 기자에게 재밌는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 주위로 극장, 볼링장, 다방, 롤러스케이트장 많았지. 좋은 영화 나온 날에는 요 앞 동아극장 매표소에서부터 충파(충장로파출소) 앞까지 2줄, 3줄씩 줄을 섰다니까. 팝콘 들고. 그때는 상영관이 1개뿐이었으니까. 나는 돈 안내고 영화 봤지. 건너편 극장 매표소 직원이랑 아는 사이니까(웃음). 더운데도 표 끊어서 내내 기다리고. 요새 젊은 친구들한테 그렇게 기다려서 영화보라고 하면 못 그럴거야?(웃음) 지금은 30분, 1시간 안에 수선이 안 된다고 하면 옷 들고 금방 다른 데로 가버리니까. 그때가 더 사람냄새가 났었지.”

수선집을 마주보고 길게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젊은 친구들이 스프레이로 그려놓은 캐릭터들도 눈에 들어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도 보인다. 그 위로 ‘no짱’이라는 글씨가 덧대어 있다. 스프레이로 자유를 그리고, 그 때문에 지워지거나 가려진 그림을 다시 덧그리고. 그런 활동의 반복으로 이 골목의 벽화는 사람들의 사진촬영 배경으로도 많이 활용된다고 한다.

어둑어둑 해지는 오후에는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담배를 피러 이 골목에 온다. 그들은 왜 어두운 뒷골목에서 담배를 태울까. “세상 말세다”라며 혀만 내두르기에는 그들은 아직 어리다.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 아저씨, 수선할 옷을 맡기는 학생들과 사회 초년생들, 노동자, 외국인. 충장로의 변화만큼 뒷골목을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가든백화점과 화니백화점이 사라지고, 한국은행은 이전됐다. 빠르게 지나는 세월 속에서 좀처럼 변하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뒷골목과 그 안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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