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두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전기는 우리가 쓰고 봉두 어르신 미안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봉두 어르신께 미안한 시민모임’이 걸어놓은 것이다. 봉두에는 마을 뒤로 두 개(154kV, 345kV), 마을 앞으로 하나(154kV) 총 세 개의 초고압 송전선이 지나간다. 송전선은 각각 서순천변전소, 광양변전소, 여수산단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지난해 6월부터 효율성을 명분으로 또 하나의 송전선로가 지어지고 있다. <전대신문>과 <오마이뉴스> 특별 취재팀이 ‘밀양의 40년 후’가 될 수 있는 봉두마을을 찾아 지난달 17일부터 19일까지 2박3일 동안 취재했다.

▲ 송전탑으로 둘러싸인 길을 오르고 있는 마을 주민

“마을이 송전탑으로 뺑뺑 둘러져 버렸잖아. 숨 쉴 구멍도 없이 감아버리니까 사람이 살 수가 없어” 스물 셋에 봉두로 시집온 새동댁(73) 할매의 말이다.

봉두에는 1970년대 처음 송전탑이 들어왔다. 그때만 해도 마을 주민들은 전기가 들어온다며 좋아했다. 공사장으로 돌도 나르고 새참도 해줬다고 한다. 주민들은 송전선 밑에 가면 소가 놀라서 뛰고 우산이 위로 뒤집혀도 송전탑을 의심할 생각도 못했다. 이웃이 암으로 죽고 소가 사산을 하고 기형을 낳아도 안좋은 이야기라며 쉬쉬했을 뿐이다. 20세에 봉두로 시집온 상두댁(72)은 “비 올 때 걸으믄 신이 찌릿 거리고, 송전탑도 '우웅~' 하고 울고. 두드럭 두드럭 거리고. 그라믄 '아이고 나 죽겄다' 하고 집으로 뛰가제. 무서워. 왜 그런고 그랬는디 알고 보니 전기가 겁나게 쎄서 그런거라드만”이라고 말했다.

전자파의 유해성을 알게된건 최근이다. 마을 전자파측정을 해보고 송전탑의 심각성을 느껴 ‘율촌면 봉두마을 송전탑 철거 시민 대책위(대책위)’를 꾸리고 피해자 조사 후 투쟁을 시작했다.80여 가구가 사는 마을에서 송전탑이 들어온 후 40명이 암으로 죽어 빈집이 18채다. 현재는 5명이 암에 걸렸고 2명이 백혈병으로 투병중이며 각종 질환 및 신경계 질환 투병자도 5명이다.

지난해 4월 한전직원과 주민들이 마을 곳곳에서 전자파를 직접 측정해본 결과 평균 4.03mG(밀리가우스)의 전자파가 측정됐다. 이는 환경부 보고서에 따른 ‘한국인 1인 평균 전자파 노출량’인 1.61mG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실제로 기자가 밤에 마을주민과 함께 송전선 아래서 형광등 켜기 실험을 해보았다. 형광등을 위로 들자 광선검처럼 불이 들어왔다. 할매들은 “워매 진짜로 불이 들어온당가. 워째야쓰까”라며 놀랐다.

전자파와 질병의 상관관계를 바라보는 한전과 마을의 시선은 다르다. 대책위는 사전예방주의 원칙에 따르는 스웨덴 기준 2mG를 국제기준치로 주장하고 한전은 우리나라의 권고기준인 833mG를 따르기 때문이다. 400배 이상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한전은 마을 주민들의 질병과 전자파의 상관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는 2009년 한전의 조사연구 보고서에 모순된 내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3mG에서 아동 백혈병 유발률이 3.8배 증가하고 4mG에서는 각종 암 발병률이 5.6배 증가한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한전은 송전탑을 세우는 과정에서 주민들의 재산권도 침해하고 있다. 스물 하나에 봉두로 시집온 상임댁(71)은 “2000평 밭에 있는 감나무도 다 없애브렀어. 언제 벤다는 말도 없이 강제로다가. 평소처럼 밭에 갔는디 나무를 싹 다 베놔서 사무실로 쫓아갔다가 그대로 쓰러져 브렀제. 그 뒤로 애가 터지고 속이 상해서 잠을 잘 못 자”라며 하소연했다. 부동산에 땅이라도 팔려고 하면 “불량한 땅을 내놓는다”며 “양심 불량하다”는 소리까지 듣는 상황이다.

 

이런 합법적인 재산권 침해는 ‘전원개발촉진법’ 덕분에 가능하다. 전력수급 안정과 국민경제 발전을 명분으로 발전·송전 및 변전을 위한 전기사업용 설비와 그 부대시설 개량을 쉽게 추진하기 위한 법이다. 땅 주인이 거부해도 공탁금만 걸어놓으면 된다. 사람보다 전기가 먼저인 악법이다.

법도 시간도 주민들의 편은 아니다. 아침마다 10첩반상을 내주시며 “찬이 없어서 우짜까. 그래도 많이 묵어”라고 하던 할매들은 구부정한 허리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보통의 시골 할매였다. 오늘도 할매들은 언제 공사하러 올지 모를 한전에 대비해 마을입구 컨테이너를 돌아가며 지키고 있다. 할매들의 유모차는 항시 출동 대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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