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퇴진하라. 민영화를 중단하라.”
12월 28일, 새해로 가는 길목에서 대한민국은 들썩거렸다. 고려대학교 후문에서 시작된 “안녕들 하십니까(안녕들)” 일곱 글자에 사람들은 “안녕하지 못하다”고 답했다. 계속되는 철도 민영화 논란, 사상 초유의 민주노총 강제진입에 노동자와 시민들은 28일 총파업과 촛불집회를 예고했다. 올겨울 첫 한파경보가 내렸던 날 <전대신문>이 서울을 찾았다.

뜨거운 안녕에 응답하다 - 청계 2가에서
낮 12시. 서울 중구 청계 2가 산업은행 앞은 지독히 추웠다. 은행과 대기업 사옥 그리고 고용노동청이 보였다. 기성 권력을 대표하는 건물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이곳에서 ‘응답하라 1228 뜨거운 안녕’ 행사가 열렸다.

무대에서는 한 인디 뮤지션이 자작곡을 열창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을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를 밝힌 200여명의 참가자들은 이날 행사의 드레스 코드인 ‘빨간색 아이템’을 저마다 몸에 두른 채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공연이 끝나고 대자보 열풍의 신호탄이 된 주현우 씨(28)가 무대에 올랐다. 그는 “이번 행사가 ‘안녕들’ 활동의 방점을 찍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행동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것은 달력뿐이다. 행동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행사장 뒤편에서 그가 고려대에 처음 내걸었던 대자보도 볼 수 있었다.   

▲ 지난해 12월 28일 '응답하라 1228 뜨거운안녕'에 참여한 학생의 모습.

참가자들도 연이어 ‘천하제일 하소연대회’라는 이름을 건 코너를 위해 무대에 올랐다. 마이크를 쥔 손은 추위에 떨려왔지만 ‘안녕하지 못한’ 사연을 토해내는 목에선 힘이 느껴졌다. 자신을 ‘용인 코끼리’라고 밝힌 청년은 “대한민국의 불안한 삶으로 안녕하지 못하다”며 “비정규직인 아버지가 최근 실직하신 것을 보고 용기가 필요해 이 자리에 처음 나왔다”고 말했다. “사회 걱정 안하고 맘껏 뛰놀 수 있는 세상 만들어 달라”는 초등학생, “학자금 대출을 언제 갚을지 막막하다”는 대학생까지 안녕하지 못한 청춘들의 이야기에 청중들은 박수와 응원으로 공감했다.

행사장 주변을 둘러싼 ‘안녕의 벽’도 의미를 더했다. 그물로 만들어진 벽에 참가자들은 마음에 쌓아둔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 붙였다. 특히 ‘파업하느라 얼굴보기 힘든 아빠 때문에 가족 모두 안녕하지 않습니다’라는 한 노조원 자녀의 사연이 유독 눈길을 끌기도 했다.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와 매서운 바람에 펜 하나 잡기도 힘들었지만 길을 지나던 시민들도 ‘안녕의 벽’에 메시지를 보태면서 벽은 이내 종이들로 가득 메워졌다.

행사는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2인조 밴드 ‘상추와 깻잎’이 노래 ‘뜨거운 안녕’을 참가자들과 같이 떼창하며 마무리 됐다. 흥에 겨운 일부 청중은 서로의 어깨에 손에 올린 채 기차놀이를 하며 무대 앞을 뛰어다녔다.      

 깃발과 촛불이 만나다 - 서울광장 에서
‘안녕들’ 참가자들은 오후 3시로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에 힘을 더하기 위해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청계 2가에서 1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였지만 가는 길에도 무대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확성기에 갖다 대며 소리쳤다. 천변 반대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 “안녕들 하십니까”하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모습에선 ‘연대’의 가치도 느낄 수 있었다. 도착한 광장에는 전국 팔도에서 모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깃발이 휘날렸다. ‘안녕들’은 지류가 하천에 합류하듯 대오로 스며들어 활동을 이어나갔다.

▲ 지난해 12월 28일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가 끝난 후 태평로의 모습이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민영화를 중단하라”는 민주노총의 커다란 구호 아래 한국온라인커뮤니티연합(KOCA), 성소수자 차별을 반대하는 모임 등 다양한 주체들도 촛불을 들고 목소리를 냈다. 재미있는 시위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이번 집회에 처음 참여한 KOCA는 직접 만든 패러디 손 피켓을 나눠주며 다소 무겁게 흐를 수 있었던 집회 분위기에 유머를 더하기도 했다. 

추위로 뻣뻣하게 몸이 굳어 가던 찰나에 집회 현장을 지키던 한 부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중학생 아들과 함께 광장을 찾은 현직교사 ㄱ 씨(43)는 “아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몸으로 느끼도록 해주고 싶어 나왔다”고 말했다. 아들의 손에선 ‘민영화 반대’가 적힌 촛불이 어둑해진 서울의 저녁을 작게 비추고 있었다.

한편 공식적인 일정이 끝나고 집회 참가자들은 멀리 청와대가 보이는 태평로와 세종로까지 행진하며 산발적인 집회를 이어갔다. 이를 제지하기 위한 경찰 측과 시민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광경도 곳곳에서 목격됐지만 큰 충돌 없이 28일 서울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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