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임상병리과에 다니는 친구에게 저녁을 먹자고 했더니 “학교에서 국가고시 자율학습을 하느라 시간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아니 고등학생도 아니고, 대학생들에게 ‘강제로’ 남아 공부를 시키는 게 대학이야?”하며 친구의 학교를 비판했는데, 이제 그 비난의 화살을 우리 학교로 돌리게 생겼다.

다음해 신입생들부터 ‘글로벌커뮤니케이션잉글리쉬’라는 과목을 ‘대학필수’로 지정하겠다는 것은 학교가 본격적으로 학생들의 토익 점수를 관리하겠다는 본부의 의지를 가득 담고 있다. 스스로가 토익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거나 시험 보기 싫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토익을 치러야 할 판이다. 올해 신입생들에게 “장학금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강요하던 모의토익이 한층 더 강화됐다. 이전에 한 보직교수가 우리 대학 학생들의 토익점수가 기업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낮은 것을 걱정하더니, 그 걱정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났다.

학교에서 취업에 대해 ‘책임’을 다하겠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된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오직 토익만을 위해 학점이라는 무기를 들고 학생들을 관리하겠다니. 취업을 위해 토익 점수가 필요하니 학교에서 관리하겠다는 것은 대학 입학을 위해 ‘학교생활기록부 관리를 잘해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고등학교와 무엇이 다를까. 그러면서도 강의명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잉글리쉬라는 영어에 대한 흔한 표현들을 붙여다 놓았다. 강의명은 강의목표를 따라가기 마련인데 아무래도 강의 목표 그대로 ‘토익점수 관리’ 식으로 붙이기엔 스스로도 쑥스러웠나 보다.

글쓰기의 경우도 그렇다. 학과마다 글쓰기의 특성이 달라 글쓰기를 대학필수가 아닌 교양선택으로 한다는 이유도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다. 필자는 1학년 때 글쓰기 수업에서 학과의 형식에 맞춘 글쓰기가 아니라 참고문헌의 중요성이나 표기방법을 배웠다. 나아가 서평, 비평, 자기소개서, 에세이 등 다양한 분야의 글을 썼고, 그 글을 쓰기 위해 참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본래 글쓰기 강의의 목적은 학과에 맞는 글쓰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글쓰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쓰기는 그래야 한다. 글의 결과물이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성찰의 시간을 갖는 것이 신입생들에게 훨씬 의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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