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 학생들 불 켜주세요.”

지난 6일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어둡던 예향학사가 베토벤의 운명과 동시에 불을 밝혔다. 방 안의 학생들은 지시에 맞춰 방의 전등을 켜고 끄기를 반복한다. 음악 속도에 따라 느려지기도 하고 빨라지기도 한다. 규칙적 모양을 만들지는 않지만 음악에 맞춰 자연스레 흘러간다. 바깥에서 구경하던 이들은 처음에는 잠시 웅성이다가 점차 오케스트라에 빠져든다. 곡이 절정에 다다를수록 방 안 악사들의 손도 빨라진다. 쉴 틈 없이 전등을 껐다 켜기를 반복한다. 속도가 빨라지고 일사분란하게 방안의 사람들이 움직이자 환호성도 나온다.

이날 공연은 2015년 개관 예정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예술극장 관객 참여형 작품(커뮤니티 퍼포머티비티) 6개 중 첫 시작인 '집에 가고 싶어(I really would like to come back home)로 지휘자 안나 리스폴리(Anna Rispoli), 600명의 예향학사 악사들이 모여 만든 빛의 오케스트라였다. 연주는 전남대학교 관현악반이 맡았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200명이 넘는 관객이 모여 빛의 향연을 관람했다.

공연은 완벽하지 않았다. 아마추어들이 모인만큼 불을 켜는 때를 놓치는 등 허술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공연은 이러한 아마추어적인 것에서 의미를 발견한다. 완벽하지 않고 기술도 없지만 공통의 행동은 곧 전체를, 공동체를 만든다.

이처럼 안나 리스폴리는 옆방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불통의 사회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이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소통이다. 반짝, 불을 키고 상대방에게 말을 건넨다. 직접적인 대면이나 대화는 아닐지라도 함께 공통의 행위를 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봤다. 함께 무엇인가를 하는 것에 의미를 뒀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소통이었다.

안나 리스폴리는 공연 직후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참여를 망설이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공연 시작 전 참여 문의가 빗발쳤다.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고 말했다. 이어 “기계주의적이고 소통이 단절된 사회가 안타까워 시작하게 된 작품”이라며 “나는 작품을 만든 사람이 아닌 함께 참여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공연을 관람했던 한 학생은 “기숙사가 넓어 전체를 관람하느라 조금 목이 아프기도 했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기하고 재밌었다”고 말했다.

안나 리스폴리는 공연 도중 관람객의 환호성을 들을 때면 그들과 같은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신나고 설렜던 시간이라는 것이다. 너를 부르고 그에 응답했던 시간, 사람들이 만들어낸 빛의 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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