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사람들의 권위가 올라가는 사회가 바로 역사발전이다"는 소설가 송기숙 씨(前 전남대 국문과 교수). 지난 8월 충북작가회와 함께 그의 소설의 모태인 '암태도'를 다녀왔다는 근황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그는 "소작쟁의는 우리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6백 여명의 농민들이 두 번이나 배를 타고 목포 검찰청 앞에서 아사동맹을 하는 등 목숨을 걸고 싸워 일본 총독부가 직접 나서서 소작료를 4할로 내리게 했던 암태도 소작쟁의에 큰 의의를 둔다. 그리고 그것은 1929년 일어난 광주학생 독립운동사건으로 이어진단다. 역사는 그 사건을 단순히 '낭만적인 학생운동'으로 그리고 있지만 "그 당시 고향을 버리고 땅을 찾아 북만주로 떠나야했던 농민들의 고통에 대한 폭발"로 그는 해석한다. 그가 5·18묘비에 "농민전쟁이래 민중들 가슴속에 흐르던 자주적, 반외세적 열망이 폭발한 것"이라고 쓴 것도 바로 그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져 '5·18 광주 민주화 항쟁'에서 민중들의 힘이 폭발한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의 글은 이렇게 민중들의 삶에 주목해 왔다. "이해 문제가 일치하고 생존이 위협받을 때 엄청난 힘이 폭발된다"는 것이 암태도와 5·18 민주화 항쟁이 서로 연장선상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그렇기에 "민중들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역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힘을 드러낸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역사학자들이 '암태도 소작쟁의'를 제대로 마주봐야한다"며 그동안 "사회주의의 영향이라도 있었을까 몸을 사리고 있었다"는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민중들이 앞장섰던 반제국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그렇게 소작쟁의로부터 보였던 현실을 외면해왔다는 것이다.

"분단문제로 인한 모순에 주목하고 있다"는 작가 송기숙 씨. 그는 "분단이라는 것이 그동안 박정희나 전두환 같은 자들의 정권유지 명목으로 유지되어왔다"고 꼬집으며 이러한 문제들로 "궁극적으로 고통받는 것은 우리 민중들이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민중들의 삶을 그리며 "모두가 억압되지 않고 풍요가 나눠질 수 있는 인류의 지향"을 꿈꾸고 있다.

/전대신문 백지선kindpl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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