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 > 세상을 품에 안은 전남대인
발전 멈추지 않는 ‘노력하는 드라마 명장’■ 세상을 품에 안은 전남대인 59. KBS 드라마국 대PD 김종선 동문(사회·76)
글=강승원/사진=송선호 기자  |  news@cnumedia.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3.12.02  16:34:3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틀린 대사까지 지적하는 ‘독종’…“무슨 일이든 온 정성 쏟아야”

   
 
“왜 찾아왔어! 내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허허.”

김종선 동문은 마주앉은 두 시간여 내내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는 “할 얘기가 없다”, “아직 부족한 사람이다”였다. 하지만 <왕과비>, <태조 왕건>, <대조영>, <광개토태왕> 등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형사극을 여러 편 연출한 그의 경험과 관록만은 숨길 수 없었다.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빛나는 날카로운 눈매와 햇볕에 검게 그을린 얼굴은 그가 어떻게 KBS 드라마국 간판 PD가 되었는지 증명하는 훈장처럼 보였다.

“일단 취업” 문 두드린 방송국
광양에서 태어난 김 동문은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76년 우리 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신입생 시절의 그는 공부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1학년 때는 공부란 걸 해본 적이 없어. 만날 학교 근처에 막걸리집 다니는 거 좋아했지. 요즘은 학생들이 어떻게 학교생활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때는 공부보다는 술과 친했던 것 같아.”

하지만 김 동문은 ‘할 땐 하는 학생’이었다. 군 복무 후 복학한 그는 시골에 계신 부모님으로부터 계속 손을 벌리며 살면 안 되겠다고 느껴 취업 준비에 매진했다. 도서관이 열리는 새벽 네 시면 전날 무엇을 했든 어김없이 출석했다.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는 그가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성실함’이었다.

“토익 책을 아홉 번 보니까 책 내용이 통째로 머릿속에 들어오더라고. 단어도 마찬가지였어. 수도 없이 보니까 3만개 넘는 단어가 외워지는 거야. 내가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꾸준히 하니까 되더라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도 취업이 쉬운 시대는 아니었다. 대학생들의 민주화운동이 활발했던 당시 사회상 우리 대학은 취업 시장에서 그다지 환영받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동문은 “일단 취업을 하기 위해서” 1985년 1월 KBS에 공채 11기로 입사하게 됐다.

“드라마 하게 될 줄은 생각 못했어”
방송국 생활을 하게 된 김 동문은 무엇을 해야 할지 이렇다 할 생각은 없었지만 “무엇을 하든지 무조건 열심히 해야 살아남는다”는 다짐만은 뚜렷했다. 그 다짐처럼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이든 최선을 다해 해냈다. 하지만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듯 궂은일부터 해야 했기에 불만도 없지 않았다.

“9시 뉴스 시작하기 전에 잠깐 나오는 SB(Station Break, 토막 광고)만 계속해서 트는 일만 하던 때도 있었어. 나도 남들처럼 폼 나게 교양국에서 다큐멘터리 하고 싶었는데. 그런데 내가 갖춘 게 뭐가 있어. 지방 출신에, 학벌이 엄청 좋은 것도, 재주가 좋은 것도 아니고. 그러니 주어진 일은 뭐든지 열심히 했지. 그러다보니 어느 날 기회가 오더라고.”

김 동문의 첫 드라마는 1992년 ‘드라마게임’의 <침대> 편이었다. 드라마게임은 1984년 4월 시작된 단막극 시리즈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으로 드라마에 입문하게 된 그는 그 해 다수의 단막극을 연출하며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했다. 드라마를 연출하겠다는 생각으로 방송국에 들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후에 드라마 영역에서 이름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한 시작이었다.

“나는 사실 드라마를 연출하게 될 것이란 생각은 0.1%도 하지 못했어. 그런데 드라마를 시작하고 연출 경험이 쌓이다보니 계속해서 드라마 일이 들어오는 거야. 시켰는데 잘한다고 소문이 나니까. 그리고 하다보니까 드라마가 나랑 잘 맞았던 것 같아.”

현장의 완벽주의자
1993년 <먼동> 조연출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대하드라마에 뛰어들게 된 김 동문이었지만 아직 드라마에 대해 아는 것은 부족했다. 이를 보완하고자 그가 선택한 방법은 무조건 방송영상을 많이 보는 것이었다. 드라마건, 예능이건, 다큐멘터리건 일을 하는 시간 외엔 닥치는 대로 비디오를 틀었다. “방송영상을 많이 봐야 세상이 요구하는 방송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시작한 비디오 탐독은 연출 경력이 30년 가까이 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그의 습관이다. 그 흔적은 그의 사무실 한켠에 가득 쌓인 비디오들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왕과비>, <태조왕건>, <대조영> 등 대하드라마의 성공들로 나타났다.

김 동문이 연출한 사극들이 성공한 데는 촬영 현장에서도 철저히 원칙을 지키는 원칙주의자, 완벽주의자인 성격이 따랐기 때문이다. 사극의 특성상 수많은 인원을 통솔하다보면 예기치 못한 변수도 생기지만 촬영 스케줄은 변치 않는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이런 그의 원칙을 방해하는 출연진도 가끔 있는데, 그만의 대처방법이 흥미로웠다.

“어느 날 주연급 배우 한 명이 말없이 1시간 30분이 넘게 지각한 적이 있었는데 그 배우가 올 때까지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않고 촬영을 중단했어. 그리고 오자마자 다른 말없이 ‘시작합시다’ 한 마디 하고 촬영을 재개했더니 배우가 사색이 되는 거야. 자기 때문에 수백 명의 출연진이랑 스태프가 촬영도 안하고 기다렸던 게 미안했던 거지. 그 뒤로는 다시 늦는 일이 없더라고.”

이처럼 그는 촬영장에서 원리원칙을 고수하기로 유명하다. 심지어 대본을 알아야 좋은 연출이 가능하다는 신념으로 배우들의 대본을 수없이 읽고 외워버려 틀린 대사까지 지적하기도 한다. 그런 그를 주위 사람들은 ‘독종’이라고 불렀다.

“촬영 중엔 거의 현장에서 먹고 자기 때문에 집에는 자주 들어가지 못해서 (가족들에게) 미안한 적도 많았지. 사실 일만 하느라 친구도 별로 못 만들었어. 하지만 화면에 나오는 장면은 완벽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었지. 시청자들 안방에 내 이름을 걸고 나가는 장면이거든. 작가는 글로, 연출자는 화면으로 이야기하는 거니까.”

“어떤 일을 하더라도 끝까지 확실하게”
사극으로 큰 성공을 거둔 김 동문이 말하는 사극의 매력은 과거로부터 현대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역사만을 알아서는 불가능하며 책, 특히 고전을 많이 읽어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대PD로서 국장급 대우를 받는 김 동문이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캐릭터와 스토리 구상을 위해 독서를 즐긴다.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서 잘하기 위해서다.

“사실 연출보다 더 잘하는 게 있었다면 진작 그 일로 옮겼을 거야. 지금도 그럴 마음이 있고.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연출이니까 그것에 온 정성을 쏟는 거지. 어떤 일을 하든지 목표를 가지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도 세우고, 끝까지 확실하게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

김종선 동문은 ▲1976년 문리대 입학 ▲1985년 KBS 입사(공채 11기) ▲2001년 대한민국 국회선정 최우수프로그램상 수상(대하드라마 <태조왕건>) ▲2002년 한국프로듀서연합회 올해의PD상·작품상, 제38회 백상예술대상, 방송위원회 대상 수상 ▲2004년 KBS 드라마제작국 부주간 ▲2007년 대한민국 국회선정 최우수프로그램상 수상(대하드라마 <대조영>) ▲2008년 제35회 한국방송대상 작품상 수상(대하드라마 <대조영>) ▲2012년 최우수프로그램 작품상 수상(대하드라마 <광개토 태왕>) ▲2013년 현재 KBS 드라마국 국장급 대PD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인기기사
1
총학 후보자들, 인문대 벤치 앞 합동 유세 진행
2
2018 총학생회 선거 정책공청회 열렸다
3
오는 21일 총학선거…최도형 VS 황법량 후보 출마
4
2018년도 10개 단과대에서 학생회 선거 진행
5
“우리는 어딜 가든 함께 해요”
6
어둠 속에 남겨진 학생, 감시 없는 캠퍼스
7
만화로 보는 팀플 유형
8
원가의 3배까지? 절실한 관객 위에 암표상 있다
9
“우리의 HERO, 바로 당신입니다”
10
모바일 투표는 처음이라!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00-757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 77(용봉동) 제1학생회관 2층 신문방송사 편집실
대표전화 : 광주캠퍼스 062) 530-0527/0523  여수캠퍼스 061) 659-6655 | 팩스 : 062)530-0522 | 발행인 : 총장 지병문 | 주간  : 주정민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정기
Copyright © 2013 전남대학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