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연기 잘하는 당찬 여배우로 알려진 하지원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이유는 그가 역사왜곡드라마로 지목 받고 있는 <기황후>의 기승냥 역을 열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시사회장에서 그는 “기황후가 고려 문화를 원나라에 전파한 인물이라고 들었으며, 때문에 지금의 한류를 일으킨 여인이다”라고 말해 더욱 대중들의 분노를 지폈다. 아마도 국민들은 공인으로서 역사의식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발언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기황후는 원나라 공녀로 몽골에 건너가 황제 순제(順帝)의 눈에 들어 제2황후가 되었다. 당시 고려는 원나라의 내정간섭으로 정치적 자주성이 심각하게 침해당하던 때였다. 공녀도 원나라의 요구로 고려의 여성을 바치던 것이었고, 이후에 그들은 낯선 땅 몽골에서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였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역사의 모습은 정치적이다. 허구의 상상력이 마음껏 허용되는 극의 장르인 드라마에서도 역사적 사안이 예민하게 다루어지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왜냐하면 히스토리(history)는 국가를 형성하는 의식의 기반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실 놀랄 것도 없는 것이 고대 왕조 시대부터 역사가 정치성을 띄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마 과거나 현재에서도 역사의 목적론적 지향점은 승리자에 의한 국가 권력의 정당성에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현대 사회에서는 특정 계층에만 이익이 집중되지 않도록 역사가 공동체 의식의 감시 기제로 비판하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역사의식 속에는 정치적인 담론들이 잠복해 있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동시에 역사성과 정치성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역사의식이 과잉되면 정치의 모습이 서서히 눈에 띄게 된다. 예를 들면, 박정희 대통령의 사례를 들 수 있다. 그는 호국 유산을 집중적으로 복원하고 충효사상 부활을 장려했다. 이러한 일환으로 이순신 장군의 상무적 기상을 강조하여 군인 출신인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하려 하였다. 또한 국책기관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도 박 정권이 요구하는 유신지배를 위한 역사적 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박근혜 정부가 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삼겠다는 것은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경계선이 모호하지만 역사는 정치와는 구분된다. 역사는 자료를 통한 현상의 분석이라면, 정치는 이익 배분이 주요한 목적이다. 그런데 역사의식의 과잉은 정치성이 가미된 조작된 이미지로서 변질 될 수 있다. 정치성의 종점인 국가 존립을 위한 역사, 여기에 반대하는 역사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의식은 민족주의 독립 운동가들이 주장하던 민족의 개념과 관련이 깊다. 민족주의자들이 말하는 역사는 결국 국가 공동체를 위한 역사이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즉 민족의 개념에서 다져진 한국적 역사의식은 국가 공동체의 해체를 막는 정치성으로 마무리되는 숙명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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