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흔히 상아탑(Ivory Tower)이라 한다. 상아탑은 프랑스어 tour d’ivoire에서 유래된 말로,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19세기 프랑스 비평가 생트 뵈브(C. Sainte Beuve)이다. 그는 1869년 낭만파 시인 알프레드 비니의 시에 대해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상아탑이라는 말을 썼다. 그러나 그 후로는 대학이 세상의 이해관계와 일정 정도 거리를 둔 채 학문에만 몰두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아마도 끊임없이 대학과 학문의 세계를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종속시키려는 지배층들로부터 대학의 독립을 지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베버(M. Weber)가 가치중립을 강조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오늘날의 세상에서 상아탑은 존재할 수 없으며, 그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대학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 사회적 의미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대학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얼마 전 중앙일보에서 실시한 대학평가의 결과가 대학가에 여러 가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 대학들이 공신력을 인정하는 대학평가는 보통 3개로 추려진다. 해외에선 영국 대학평가기관 QS와 더타임즈 세계대학평가가 권위를 갖고 있다. 국내에선 아직 권위를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꼽히고 있다.

이들 평가에서는 몇 가지 양적 기준들을 중심으로 대학의 서열을 매기고 있다. 예를 들면 중앙일보 대학평가는 전국 4년제 대학을 대상으로 교수연구(100점), 교육여건(90점), 평판·사회진출도(60점), 국제화(50점) 등 4개 부문을 기준으로 평가를 한다. 그런데 대학은 다양성이라는 특성상 모든 분야에 동일한 평가 기준을 적용할 수 없다. 심지어 동일한 학과 내에서도 전공별로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이런 평가가 일종의 재미이며, 잘해야 참고 대상 정도이다.

문제는 서열세우기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 그것을 대학의 진짜 서열로 여긴다는데 있다. 그 결과 대학에서는 자신의 순위 올리기에 급급하다. 좋은 논문보다는 많은 수의 논문이 중요하고, SCI급 논문과 그렇지 않은 논문 사이에는 내용과 관계없이 위계적인 가치가 부여된다. 교육적 가치가 큰 강의보다는 외국어강의 수가 평가에 도움이 되며, 학생들과 얼마나 소통할 수 있는지 보다는 외국인 교수 수가 더 중요하다.

기술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대학은 인간이 도구화되는 것을 막는 최후의 보루이다. 인간이 기술문명에만 치우칠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우슈비츠에서 충분히 경험하였다. 인간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교육, 모두에게 행복한 공동의 삶을 꿈꾸게 하면서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게 하는 교육, 대학에서는 이런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학생들은 창조적인 지성인으로 성장해야 한다. 우리 대학이 대학평가에서 나타난 결과와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대학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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