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여왕과 부드러운 카리스마, 그 둘이 이끈 90년대 패션

▲ <보그>와 <바자>는 <위대한 개츠비>의 여주인공 캐리 멀리건을 표지모델로 서로 다른 컨셉의 화보를 찍었다.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누구나 들어봤을 두 팀의 라이벌관계는 카탈루냐, 카스티야라는 두 왕국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때의 경쟁관계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우리에게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또한 서로가 더 열심히 경기를 하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이렇게 경쟁하면서도 서로를 성장시킨 라이벌들을 2회에 걸쳐 소개하려고 한다. /엮은이

안나 윈투어 vs 리즈 틸버리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악마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 악마라는 수식어에 걸맞게 그녀는 악랄하게 묘사된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과장이 아니다. 오히려 실제 모델인 안나 윈투어(Anna Wintour)보다 더 친절하게 미화됐다.

안나는 실제로도 패션잡지 <보그>의 ‘보그 뉴클리어’(보그의 핵폭탄)라고 불린다. 그녀는 화보 촬영부터 시작해 편집, 발행까지 모든 것을 다 지휘하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잡지를 찍어내는 독재자다. “뉴욕컬렉션이 제일 먼저 보고싶다”는 한마디로 런던-밀라노-파리-뉴욕 순으로 열리던 패션위크의 첫 시작을 뉴욕으로 바꿔 놓는 절대 권력 안나.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도 라이벌은 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1990년대 <보그>와 쌍두마차가 되어 패션계를 이끌던 <하퍼스 바자>(바자)의 편집장, 리즈 틸버리스(Liz Tilberis)다.

안나와 리즈의 만남은 1989년 리즈가 에디터로 일하고 있던 <보그UK>에 안나가 새로운 편집장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그녀는 독재자였어요. 안나가 상관으로 오던 첫 날부터 저는 앞날을 예감할 수 있었답니다. 앞으로 꽤나 많은 문화적 충돌과 취향에 따른 다툼이 있겠다는 걸 말이죠.”

리즈는 안나를 썩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았다. 더구나 판타지 적이고 새로움을 시도했던 <보그UK>가 현대지향적인 안나의 취향으로 바뀌면서 많은 다툼과 의견충돌이 생겼다. 하지만 다툼을 싫어했던 리즈는 안나의 스타일을 받아들이며 <보그UK>에 남아있었다. 이후 안나는 리즈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며 둘의 인연은 좋게 끝나는 듯했다.

안나의 <보그>, 리즈의 <바자>
1992년 리즈가 미국 <바자>의 편집장으로 역임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모든 언론은 안나와 리즈를 불꽃 튀는 경쟁자로 만들기 시작했다. 두 영국인 출신 편집장들이 어떻게 미국의 패션잡지를 이끌지도 관심거리였지만, 정반대인 둘의 성향 탓에 더욱 주목받았다.  독선적인 경향의 안나와 부드럽고 유연한 편집장인 리즈는 누가 봐도 대립되는 성격의 편집장들이였다.

리즈가 <바자>를 맡을 당시 <바자>에는 유능한 사진작가가 없었다. 유능한 사진작가들이 있는 <보그>에서는 “<바자>와 함께 일하는 사진작가는 다시는 전세계의 콘데나스트(<보그>의 출판사)계열 잡지와 작업할 수 없다”는 엄포를 놓아 리즈가 사진작가를 영입하는 것을 어렵게 했다. 이 때 리즈는 ‘창조권의 자유’를 내세웠다. 마침 안나의 스타일대로만 찍어내는데 신물이 난 사진작가들은 하나둘 <바자>로 갔고 마침내 리즈는 새로운 팀을 꾸리게 됐다.

“Enter the era of elegance(우아함의 시대로 들어오라).”

리즈는 이 캐치프레이즈를 들고 <바자>의 새 도약을 일구어냈다. 그 당시 최고의 모델 린다 에반젤리스타가 표지모델로 등장한 리즈의 창간호는 이전 호보다 몇배는 더 많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수많은 카피를 생산해 내며 유행을 선도했다. 안나는 속이 타들어갔다. 항상 자신의 손에서만 만들어지던 유행이 신출내기 편집장에게서 만들어졌으니 그녀의 자존심이 리즈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부러 리즈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으며 “그런 것에는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며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그 이후로도 안나와 리즈는 매월 새로운 호가 나올 때마다 팽팽한 경쟁구도에서 모든 매스컴의 주목을 받았다. 특히 9월 패션위크가 시작될 때면 모든 매체들은 그녀들의 동태를 살폈고, 경쟁구도 때문이었는지 항상 <보그>와 <바자>는 매월 새로운 컨셉을 내놓으며 자신들만의 특색을 만들어 나갔다.

독선적인 안나와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리즈는 서로를 성장시켰다. 이들은 화려하기만 했던 1980년대 스타일에서 벗어나 세련되고 우아한 스타일로 1990년대 패션을 주도해나갔다.

 끝나지 않는 경쟁
비록 리즈가 난소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안나와 리즈의 경쟁은 끝났지만 <보그>와 <바자>는 아직도 경쟁중이다. 유명인사를 먼저 섭외하기 위해 발빠르게 뛰어다니고 상대보다 더 새롭고 참신한 컨셉을 잡기위해 서로에게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뽑아낸다.

작게는 표지커버부터 크게는 내부 인사 스카웃까지도 경쟁하는 두 잡지는 판매부수 1, 2위를 다투며 패션계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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