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측면보다 산업화 초점 맞춰 편안한 전시로 대중과 소통

“여그 황산벌 전투에서 우리의 전략·전술적인 거시기는 한마디로 머시기할 때꺼정 갑옷을 거시기하자.” 전국을 사투리로 뜨겁게 달궜던 영화 ‘황산벌’에서 백제군들의 대사다. 신라군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전라도에서는 ‘거시기, 머시기’라는 단어로 소통이 이뤄지는 경우가 흔하다. 서로가 문화와 특성을 알고있기 때문에 이런 모호한 말이 ‘그냥’ 이해가 되는 것이다. 다음달 3일까지 열리는 2013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도 ‘거시기, 머시기’처럼 우리에게 알 듯 말 듯 자연스레 스며드는 디자인들과 ‘통’해보자. 

지역민들의 축제, 2013광주디자인비엔날레
이번 비엔날레는 한국 전통문화에서의 보편적인 ‘것’에서 새로운 ‘멋’을 더한 디자인의 제1전시관(주제관)과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진화해 온 착한 디자인 제2전시관, 아세안 11개국 가구의 원형과 현대의 디자인을 더한 제3전시관(국제관), 상업적인 가치를 더한 디자인 제4전시관, 광주가 중심이 된 제5전시관(광주관)으로 구성됐다. 그리고 직접 시민들이 만든 작품들이 전시되었고 체험 할 수 있는 작품이 많아 이번 비엔날레는 ‘지역민들의 축제’이기도 했다.

▲ 제5전시관(광주관)에서는 1,000명의 광주시민을 대상으로 '광주에서 가장 소중한 것'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20단어를 정리한 작품이 전시됐다. 광주 시민 1,000명이 그 단어들을 한땀한땀 수를 놓아 완성한 작품을 수거해 하나의 커다란 등으로 다시 제작했다.

funegy:fun+energy전에선 노래가 흘러나왔다 끊겼다를 반복했다. 손잡이를 돌리는 속력에 따라 불이 켜지고 노래가 흘러나오는 전시물을 아이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저 노래가 나오는게 신기한지 세차게 자가발전기를 돌리며 즐거워했다. 그 옆엔 까만 판이 하나 놓여있었다. 판 아래 손잡이를 돌릴 때마다 불빛이 하나씩 켜졌고 9개의 불빛이 모두 켜지자 하트가 만들어졌다. 이 전시물을 구경하던 연인의 남자친구가 힘들게 자가 동력기를 돌려 하트를 만들어 내자 여자친구는 환하게 웃음지었다. 이렇게 모두가 즐거워하는 이 전시에 누군가는 ‘이런게 디자인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스스로 동력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조형적 즐거움도 찾아 볼 수 있기에 의미있었다.

이번 비엔날레는 유독 한국적인 것이 주를 이뤘다. 한지로 만든 등과 바구니, 버선, 키 등 한국적인 요소가 많았다. 그 중 커다란 보름달아래 잔잔히 물이 흐르는 한 폭의 수묵화 같은 모습의 한국식 호텔 입구는 쉼의 의미를 다시 보여줬다. 서로 다른 4인의 디자이너가 만들어낸 동양화 모티프 공간 디자인전은 한국 문화가 갖고 있는 여유의 미학을 쉼이라는 주제로 연결했다. 침실에는 푹신한 침대 대신 옻칠 침상을 놓아 딱딱하지만 건강을 생각했고, 의상도 인테리어가 될 수 있다는 디자이너의 생각에 따라 예쁜 벽지 대신 한복이 걸려진 좌식 카페를 통해 한국적인 미와 우리의 정서를 엿볼 수 있었다.

더 쉽게, 더 실용적이게
이전의 비엔날레에 비해 이번 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미학적 측면보다 산업화에 더 초점을 맞췄다는 것이다. 전시물 앞에 놓여진 작가 명함들 때문에 전시관이 아니라 판매점으로 느껴질만도 하지만 나샛별 도슨트는 “40인의 단편전은 공모를 통해 디자인으로 지역의 산업 발전에 공헌할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뜻깊다”고 말했다.

오히려 상업적이기에 우리 삶에 더 가까이 있어 이해하기 쉬운 전시가 됐다. 탁자, 조명등, 마사지 제품, 시계 등 우리 주변의 물건들을 디자인으로 다시 풀어내 친근함을 안겼다. ‘비가 올 때, 아침 햇살을 볼 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지금은 쉬어야 될 때’라는 쉼표모양의 시계는 어떠한 설명없이도 모든 사람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산업화된 디자인은 우리에게 더 가까이 와있었다.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온 쉬운 디자인
전시관을 나가는 길, 관람객들에게 쌀 패키지가 무료로 배포됐다. 이 행사는 단순히 먹을거리인 쌀을 나누는 게 아니라 쌀 한웅큼에 담긴 문화와 역사, 공동체 의식을 교감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관을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즐거웠던 것은 비단 관람을 마치고 받은 쌀 한 봉지 때문이 아니었다. 애인과 함께 전시관 문을 나온 한 관람객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며 “체험하는 것들이 재밌었다”고 말했다.

지역민이 함께 참여해 지역 축제와 같았던 2013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오는 전시였다. 비록 미적인 측면은 빛을 보지 못했지만 산업화된 디자인이 우리 곁에 더 가까이 스며들어 우리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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