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기념하는 첫 행사가 열린 것은 1926년 11월 4일이었다. 1926년은 <훈민정음>이라는 책이 간행된 지 480년, 즉 여덟 회갑이 되는 해였다. 한글날은 한글 탄생을 축하하는 일종의 회갑연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조선어 연구회와 신민사가 공동으로 주관한 이 행사에는 당시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이후 1937년부터 광복 전까지 일제의 잔혹한 탄압이 극에 이르던 시기를 제외하면 한글날은 매년 그 규모와 상관없이 기념식을 거행해 왔다. 그런데 올해의 한글날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글날에 다시 ‘놀’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노는 날’이라는 것은 국민들의 기억에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글날은 1949년 대통령령으로 법정 공휴일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1990년 11월 공휴일의 수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한글날은 국경일에서 제외되면서 단순한 기념일로 그 지위가 추락하였다. 2005년에 와서 다시 국경일로 회복되었지만 공휴일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는 사이 한글날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억은 점점 멀어져만 갔다. 2011년 기준으로 한글날이 언제인지 모르는 국민들이 37%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는 이런 사정을 잘 말해 준다.

작년 말 뒤늦게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되는 바람에 한글날이 공휴일로 표시되지 않은 달력도 적지 않고 국민 중 1/3은 아직도 한글날이 공휴일인지 모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부터 한글날은 분명히 쉬는 날이 되었다. 이제 앞으로는 한글날이 언제인지 모르는 국민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너무 반갑다. 한글날은 이렇게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국어를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바람은 국민들에게 한글날이 단순히 하루 쉬는 공휴일 이상의 의미로 다가갔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잘 알아야 한다. 한글이 위대한 문자라는 단순한 명제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다. 한글 또는 한글날에 대한 의미 있는 지식들이 국민들에게 충분히 전달된다면 굳이 억지로 강조하지 않아도 한글에 대한 사랑, 한글날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게 뒤따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오늘은 한글날에 얽힌 이야기를 한 가지 해 보려고 한다. 현행 한글날이 왜 10월 9일이 되어야 하는지는 네이버의 지식인에 물어 보면 제법 그럴 듯한 답변을 얻을 수 있다. 필자가 하려는 이야기는 이보다도 좀 더 근본적인 것과 관련된다. 이를 위해서는 ‘훈민정음’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는 사실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훈민정음’은 문자를 가리키기도 하고 그 문자를 해설한 책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두 가지는 완전히 서로 다른 대상이다. 문자로서의 훈민정음은 1443년 음력 12월 세종대왕께서 친히 만드셨다.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은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집현전의 학사들이 세종대왕의 명을 받들어 간행했다. 이 책은 1940년에 처음 발견되어 국보 70호로 지정되었고, 몇 해 전에 같은 책이 한 권 더 발견되었지만 소유권 분쟁을 겪으며 현재는 그 행방이 오리무중 상태에 있다.

한글날 기념식을 10월 9일에 거행하는 것은 ‘책’이 간행된 날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훈민정음>이 간행된 음력 9월 상순(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것이 현재의 한글날이다. 그러다 보니 <훈민정음>이라는 책이 처음 발견된 1940년 이전에 거행했던 한글날은 현재와는 날짜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다른 기록에 의거해 음력 9월 29일을 기준 삼아 한글날 기념식을 열었다.

문제는 ‘한글날’이라는 명칭을 고려할 때 이 날은 ‘책’이 만들어진 날이 아니고 ‘한글’이라는 ‘문자’가 만들어진 날이어야 하지 않느냐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실제로 이러한 의문과 문제 제기가 적지 않았다. 만약 문자의 창제일을 기준으로 한다면 음력 12월 중 어느 하루가 한글날이 되어야 하므로 한글날은 1월의 어느 날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북한의 한글날이 끼어들면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북한은 문자가 창제된 1443년 음력 12월의 기록을 중시하여 한글날을 1월 15일로 정한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북한의 한글날이 그 의미에 맞게 제대로 정해진 것이고 대한민국의 한글날은 그렇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불만을 살 수도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요즘 시국 같으면 남과 북을 비교하는 가운데 불필요한 오해까지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책이 간행된 날짜를 한글날로 정했다고 해서 불합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

1443년 12월에 처음 만들어진 훈민정음이라는 글자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였는지는 전혀 모른다. 기록에는 새 문자가 만들어졌다는 사실만 간략히 나올 뿐이다. 게다가 1444년 최만리 등이 훈민정음의 창제에 반대하는 상소문을 보면 훈민정음의 글자 수가 28자가 아닌 27자로 나오고 있다. 아무튼 1443년 12월에 만들어진 글자가 1446년 간행된 책에서 설명한 글자와 완전히 동일한 형태라고 100% 단정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훈민정음 모습은 1446년에 나온 책에 나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나온 10월 9일을 한글날로 정한 것은 결코 문자의 창제일과 무관하다고 할 수가 없다.

어쩌면 여기서 이야기한 문제가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사소하게 다가갈지도 모르겠다. 문자의 창제를 기념하면 어떻고 책의 간행을 기념하면 어떤가. 그러나 작은 것을 소홀히 할 때 어떤 위험이 있는지는 여러 사례를 통해 확인하는 바이다. ‘훈민정음’이 문자와 책의 두 가지 대상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모르면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국보 1호 남대문이 불탔을 때 새로운 국보 1호로 ‘한글’을 지정하자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 나왔던 것이다. 국보 70호인 ‘훈민정음’이 한글이라고 착각하고 이것을 1호로 바꾸자고 한 주장이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대상에 대한 애정은 그것에 대한 ‘앎’에서 시작한다. 모르는 대상에 대한 애정은 생기기도 어렵지만 오래 지속될 수도 없다. 실로 20여 년 만에 다시 공휴일로 복귀한 한글날이다. 어쩌면 한글날이 다시 탄생했다고도 할 수 있다. 새로 태어난 한글날에 대한 우리들의 애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글날’에 대해 많이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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