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최대 상권을 자랑하던 충금로가 무너지고 있다. 사진은 장사가 잘 되지 않아 문을 닫은 금남로 지하상가의 모습.
“갈수록 장사가 잘 안되요. 이것 보세요. 사람이 없어서 한가하잖아요. 80-90년대는 점포가 400개가 넘었어요. 그 가게가 다 잘 됐죠. 지금은 현상유지도 못하는 곳도 많습니다. 이곳이 만남의 광장일 때가 있었는데….”

충금지하상가에서 들리는 목소리다. 광주 최대의 상권을 자랑하던 충금로가 무너지고 있다. 충장로와 금남로 일대를 일컫는 충금로는 광주의 상권을 독점하던 장소다. 그 중에서도 충금지하상가는 당시 광주의 의류 상권을 장악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충금지하상가가 설립된 이후 경기불황을 비롯한 여러 문제로 가장 큰 고난에 부딪힌 상인들의 입에서는 힘없는 푸념만 나온다.

충금로의 황금시대, 광주를 빛내던 그 시절
1980년 전두환 신군부 정권이 들어섰다. 신군부는 대북정책의 일환으로 전국적인 요새화 작업을 진행해나갔다. 그렇게 전시에는 방공호(적의 공중 공격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땅속이나 산속에 파 놓은 굴이나 구덩이)로 평상시에는 시장으로 운영할 수 있는 지하상가가 신설됐다.

“1980년 8월에 지하상가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어요. 그 당시에는 128개 점포가 문을 열었습니다. 정말 잘 운영되었어요. 유명 연예인들이 1일 도우미로 오기도 했었다니까요.”

충금지하상가번영회 회장이자 옷가게 ‘동양’을 운영하는 ㄱ 씨는 활발히 운영되던 지하상가의 옛날을 회상했다. 만남의 광장에서 만난 퇴직교사 ㄴ 씨도 충금지하상가가 신설될 때 처음으로 네온사인과 냉방시설이 도입됐었던 그 당시를 설명했다. 또한 충금지하상가는 백화점보단 못하지만 재래시장보단 뛰어난 질의 제품을 공급해 순식간에 중산층의 의류 상권을 장악했다. 당시 처음 접하는 신식 기술과 적절한 물품의 품질 그리고 경제적 호황이 맞물리며 충금지하상가는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충금지하상가 황금기인 80-90년대에는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이용했다. 지하상가 안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아 서로가 서로를 밀면서 이동할 정도였다. 상인들은 손님이 많아 이틀이 멀다하고 서울로 제품을 구하러 가곤 했다.

“장사가 너무 잘 되가지고 고작 2평짜리 가게로 가정을 꾸리고 애들을 키울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대단한거죠.”

빛을 잃어가는 충금지하상가
충금지하상가의 번영이 끝없이 지속되지만은 않았다. 80년대와 달리 지금의 충금지하상가는 갈수록 손님이 줄어 현상유지를 하기도 급급하다.

충금지하상가가 빛을 잃어간 것은 도청과 시청을 비롯한 관공서 이전에서 시작됐다. 도청을 비롯한 여러 관공서들에 근무하던 사람들이 충금지하상가의 주고객이었지만 관공서가 이전되면서 충금지하상가는 3,000여명의 고객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게 됐다. 관공서 이전은 충금지하상가뿐만 아니라 동구 상권 전체에 큰 타격을 주게 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관공서 이전 후 주거 공간이 신설되지 않아 인구 공동화 현상(도심지역에서 주거기능 약화로 인구밀도가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동구는 수요를 회복하지 못했다. 그 사이 광주는 상무지구나 일곡지구와 같은 신도시가 개발되며 광주의 상권은 분할됐다. 동구는 상권을 회복하지 못한 체 침체의 길로 빠졌다.

충금지하상가 옷가게에서 만난 ㄷ 씨는 상품이 지출이 가장 적은 중·노년층에게 집중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는 “물건이 우리 것 밖에 없는데 젊은 사람들이 오겠어?”라고 반문했다. 우리 대학 ㄹ 씨(경영·08)도 ㄷ 씨의 의견에 동의하며 “지하상가보다 지상에 있는 상가의 옷가게가 다양한건 물론 가격도 저렴하고 구경거리도 많다”며 “굳이 내려갈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반면 상품이 중년층에 집중되어 있어 장사가 꾸준하다는 입장도 있다. ‘메이커 할인 매장’을 운영하는 ㅁ 씨는 “별로 차이를 못 느끼겠다”며 상권의 침체를 거부했다. 그는 “1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출은 비슷하다”며 “유동인구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마찰의 연속인 되살리기 계획
물론 번영회를 비롯한 여러 단체에서 충금지하상가의 침체를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동구청에서 주관하는 7080충장축제는 충금지하상가를 비롯해 충장로와 금남로 일대를 살리기 위한 맥락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현재 7080충장축제는 외부상인들이 주도하고 있다. 상인들은 “그 기간 동안 오히려 손님이 줄어 손실이 크다”며 울분을 토했다.

충금지하상가에서 온누리 상품권을 사용 할 수 있는 방안도 마련됐지만 이 역시 효과가 미비하다. 수선집을 운영하는 ㅂ 씨는 “효과가 크지는 않다”며 “상품권은 가입 절차가 있어 소규모 상인들에겐 힘들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낙후된 시설 개선을 위한 리모델링, 상인 친절교육과 엘리베이터 신설 등을 통한 활성화방안을 계획하고 있다. 충금지하상가번영회는 젊은 고객유치를 성공해 백화점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린 부산 서면시장을 목표로 지하상가 살리기에 여념이 없다. 충금지하상가 상인들은 과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여기에 30년 넘게 운영하는 사람이 11명 정도 되요. 우리 11명을 비롯해서 여기 대부분 상인들이 나이가 들어서 솔직히 소득을 목표로 일하는 게 아닙니다. 상가를 계속 운영하기만을 바랄뿐이에요. 그렇게 계속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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