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19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11월, 월간 『새벽』에 한국문학사에서 불세출의 작품으로 남을 중편소설이 발표된다. 최인훈의 「광장」이다. 남과 북, 좌우 이데올로기 어디에도 편입되기를 거부한 한 인간, ‘이명준’으로 기억되는 이 소설은, 분단된 한반도 상황에 맞서 ‘과연 인간 삶의 조건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된 이 소설의 서문에 최인훈은,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는 말로 그 삶의 조건에 대한 답을 명시한다. 당시 이 서문에서 그가 진단한 한국사회는 “광장은 죽은 곳”이었다.

「광장」이 발표된 지 무려 53년이 지난 2013년 현재, 이명준이 머물기를 거부했던 밀실로서의 우리 사회는 안녕한가. 유감스럽게도 그 질문조차 꺼내기 부끄러운 상황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굳이 지난 몇 년, 올 연초까지 거슬러 올라 갈 필요도 없다. 이번 8,9월에 벌어진 굵직굵직한 상황만 정리해도 한 짐이다.

광복절 기념공연에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었다는 것 때문에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 징계, 정지영 감독의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메가박스 상영 중단,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출품된 작품(태극기와 인공기를 결합한 작품들)에 대한 산업통상자원부의 철거 지시, 국정원 공무원의 선거 개입을 비판한 광주 북구, 광산구의 공무원노조 압수 수색. 급기야 멀쩡하게 공식 교과목으로 개설된 강의내용을 문제 삼아 학생이 교수를 국정원에 신고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어떤 목소리도 여전히 허용하지 않는, 광장 없는 사회. 이것이 50여 년 전 작가 최인훈이  던졌던 질문에 대해, 2013년의 우리들이 내놓은 답이다. 최소한의 건강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그 사회의 최후 보루로 남아 있어야 할 예술분야와 대학 내에까지 이데올로기의 유령이 춤추고 있는 현실은 눈물 날 정도로 남루하다. 도대체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수십 년 전의 질문에 사로잡혀 있어야 하는 것인지, 과연 온전한 ‘푸른 광장’은 가능한 것이긴 한지, 그리고 ‘광장’의 메타포를 언제까지 지긋지긋하게 반복하며 이런 글을 써야 하는 것인지, 한심스럽다 못해 참담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인훈은 ‘역사는 소걸음으로 간다.’라며 미래에 대한 낙관을 피력한 바 있다. 4·19, 5·18, 6월 항쟁 등 ‘광장’을 확보하기 위한 거대한 역사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병적 퇴행 또한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소걸음’이 맞다. 비록 소걸음일지언정 현재로선 그 힘을 믿어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다만 그 힘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퇴행의 모든 음모에 대한 준엄한 시선과 발언을 거두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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