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사회 체제에 이르기 위해 서구 사회에서 가장 큰 진통과 갈등을 겪은 국가는 단연 프랑스이다. 1789년의 대혁명에서부터 시작하여 현재의 제5공화국 체제에 이르기까지 프랑스는 세 번의 혁명, 다섯 번의 공화정, 두 번의 제정, 한 번의 입헌군주제를 거쳤다. 게다가 단 두 달의 생명밖에 유지하지 못했지만 인류 최초의 노동자 정부인 파리 코뮌을 겪었고 학생들이 주도한 1968년 5월 혁명은 프랑스인들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갈등은 구체제의 특권 계급과 제3신분, 공화파와 왕정복고파, 부르주아와 노동자, 구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서 불거졌으며 대립의 양 진영 모두 많은 희생과 피의 대가를 치르고서야 지금의 프랑스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갈등의 역사는 프랑스인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었을까? 프랑스인들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바로 함께 사는 법의 터득인 것처럼 보인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공존의 원칙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터득한 공존의 첫 번째 원칙은 바로 관용이다. 프랑스어로 Tolerance(톨레랑스)라 불리는 이것의 출발점은 차이의 인정이다. 종교, 정치적 신념, 인종, 문화의 차이에서부터 사랑하는 방식의 차이에 이르기까지 같은 공동체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나와는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관용의 도착점은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라는 말이 보여주는 것처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불의와의 투쟁이다.

공존의 두 번째 원칙은 연대이다. 연대의 출발점은 타자의 존재가 나의 존재를 위한 절대적 조건임을, 즉 '고립된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 구성원들이 상호 종속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의 도착점은 고통과 불행에 빠진 이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의 수용과 이의 적극적인 실천이다. 연대는 부자가 빈자에게 베푸는 너그러운 자선이 아니라 당연히 실행해야 할 의무이다. 왜냐하면 공동체를 구성하는 다른 사람들이 없다면 나도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대의 원칙은 개인의 구호 활동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국가의 복지 정책으로도 표현된다. 감당해야 할 몫이 구성원 개개인의 자발성에 의지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까닭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사회는 관용의 정신도, 연대의 의무도 찾기 어려운 캄캄한 어둠 속에 놓여 있다. 지역, 신념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죽음의 언어로 자기와 다른 사람들을 저주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수많은 예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무한 경쟁 속에서 나의 생존에 급급해 우리는 타인의 불행에 눈을 감고 국가는 국민의 고통에 충분히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이 어둠 속에 영원히 갇히게 되지 않을까? 많은 희생을 치르고 얻은 인류 역사의 교훈 앞에서 선택과 결단을 해야 할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