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를 지나다니다 보면 풍경처럼 스쳐 지나가게 되는 노란 봉 하나가 있다. 그냥 봉이라고 하기엔 좀 두껍고 크고, 또 기둥이라고 보기엔 너무 짧은데다 위쪽에 벽이 이어져 있지도 않다. 어떤 표시를 하기 위해서인데, ‘안심벨’이라는 빨간 글씨를 달고 선 그 기둥은 빨간 버튼을 머리꼭지에 달고 멀뚱히 서있다.

이 안전 벨은 ‘여성 학생들을 성폭행의 위협에서 방지하고자’ 설치된 경보벨로, 현재 액션플러스 총여학생회에서는 이 안심벨이 있는 위치를 표시한 ‘안심지도’를 만들어 배포하였다. 좋은 취지로 만들어진 좋은 서비스이다. 그러나 이 안심벨에, 페미니즘은 없다.

학내에서 성폭행의 위협이 닥친 한 여성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뒤에는 괴한이 쫓아오고 있다. 이 때, 여성이 안심 벨을 발견하기 위해 학내를 뛰어다녀야 하는가? 만일 그것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누르도록 괴한은 순순히 두고 볼 것인가? 안심벨을 눌렀다 한들, 괴한은 체력적으로 약한 여성에게 위협을 가해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어려운 일일까? 만일,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있다 하면, 그 여성에게 왜 안심벨이 있는 ‘안전한’ 자리를 지나다니지 않았느냐고 힐책해야 하는가?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원인은 그저 ‘여성의 부주의함’이나 ‘밤길의 어두움’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해자 남성의 80프로 가량은 안면이 있는 사람이다. 여성이 믿고 있었던 사람들에게까지, 여성은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성폭행이 사회 전반에 걸쳐 형성된 남녀의 권력 차에서 형성된, 하나의 ‘현상’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남성은 가감 없이 성을 발산하고, 여성은 성을 지키고 억압해야 하는 위치에 머무르는 순간, 남성은 가해자의 선을 넘나들고 여성은 피해자의 선을 넘나들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여성 학우의 성폭행 사건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안심벨의 설치보다 먼저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했던 것은, 남녀의 구조적 성권력을 무너트리기 위한 운동이다. 성폭행이 어떤 권력 차에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알리고, 성폭행이 타인에게 일어난 ‘불의의 사고’정도로 취급되지 않도록, 또 피해 여성이 손가락질을 받는 등의 2차 성폭력이 없도록 하는 등의 지침서와 소책자 발부 등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뜬금없이 쫓아올 괴한보다 눈에 익은 친인척, 지인 가해자가 많은 한국 사회에 설치해야할 1차적 안심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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