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 농군’의 농업해외봉사…“내 지역도 잊지 말길”

‘한 우물을 파라.’ 한 가지 분야를 평생 자신의 업으로 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농업이라는 우물을 파며 자신뿐만 아니라 남들도 만족시키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 농업기술을 제3세계에 전파시키고 우리 농촌을 위해서도 힘쓰고 있는 허동운 동문이다.

참외농가의 아들, 세계로 눈을 돌리다
허 동문은 전남 화순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참외농사를 짓는 부모님, 참외밭, 농기계 등을 보며 자란 허 동문에게 농업과 농촌은 어렸을 때부터 친숙했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일을 돕는 게 좋았다. 공기 좋은 농촌에서 혼자 사색하는 것도 좋았고, 작물이 자라는 것을 보며 신비함도 느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커서도 농업에 종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그의 꿈은 군복무 후 구체화되었다. 1993년 경희대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자퇴한 그는 군 제대 후 1998년 한국농수산대학에 입학했다. 한국농수산대학은 전문농업인을 양성하는 3년제 전문대학으로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적격이었다.

입학 후 미국으로 떠난 1년간의 해외현장실습에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자신처럼 농업연수를 온 한 일본인 친구로부터 해외농업봉사를 나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의 마음이 두근거렸다.

“동남아에 선진농업기술을 전파하고 싶었다. 동남아는 작물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농업 인프라만 적용시킨다면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앞으로 해외에서 농업을 하게 된다면 인도네시아가 어떨까 싶은 마음에 그 곳으로 가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불안함에서 마음 따뜻한 경험까지
미국연수 후 귀국한 허 동문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인도네시아 해외봉사단원 공고에 지원했다. KOICA는 외교통상부 출연기관으로 다양한 분야의 우리나라 기술을 제3세계에 전파하는 일을 하는 기관이다. “KOICA 봉사단원 활동은 단순한 노력봉사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그의 말처럼 허 동문은 KOICA 단원이 되기 위해 까다로운 과정을 거쳤다. 영어, 농업기술, 일반면접을 통과하고 국내에서 8주간 현지문화훈련, 인도네시아에서 8~10주간 현지어 교육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현장에 투입될 수 있었다.

난생 처음 가보는, 2년 동안 지내야 할 인도네시아 깔리만탄주는 전화부터 대중교통까지 많은 것들이 낯설고 부족한 땅이었다. 경운기, 트랙터 등 우리나라에선 이미 보급화된 농기계들도 현지인들에겐 생소해 허 동문은 처음에는 농업기술 전파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현지인들이 농기계를 이용한 농업자동화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보니 원론적인 부분부터 사용법과 관리법, 보다 효과적인 운영방법까지 처음부터 자세히 전달해야 했다. 차츰 현지인들도 선진농업기술이 농가 소득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가더라. 나중에는 현지인들이 농업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한국의 문물에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깔리만탄에서의 2년을 마치고 귀국한 허 동문은 KOICA에 정식 입사했다. 그는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등으로도 떠나 내전으로 황폐해진 땅을 농업기술로 재건하는 데 힘썼다. 언제 위험한 일이 닥칠지 모르는 곳이었기에 신변안전에 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해외봉사에 대한 열정을 식힐 수 없었던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 때문이었다.

“봉사 후 5년 뒤 점검 차 다시 찾은 깔리만탄에서 한 청년이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알고 보니 봉사 당시 친하게 지냈던 꼬마아이가 자라 나를 알아본 것이다. 또 마을 주민들이 귀한 음식들을 내놓으며 잔치를 벌여 나를 반겨주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잊었을지라도 나를 기억해주는 그 사람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다.” 

사람들 속에서 허 동문이 가장 크게 얻은 것은 ‘감사함’이었다. 한국에서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풍족하게 누렸던 것들이 제3세계에서는 부족했다. 그는 자신이 몰랐던 새로운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적응하려고 노력하며 조그만 것에도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

“넓은 세상을, 하지만 내 지역도 잊지 말길”
여러 나라들을 돌며 농업봉사에 참여한 허 동문이지만 그는 결국 우리 지역에 돌아왔다. 해외 봉사활동 후 허 동문은 2005년 우리 대학에 입학했다. 농업 관련 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알고 지내던 교수의 추천 때문이기도 했지만, 우리 지역을 위해 일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

그는 현재 한국해외봉사단원연합회(KOVA) 광주·전남지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KOVA는 KOICA를 통해 해외봉사에 파견돼 있거나 귀국한 단원들의 모임으로 KOICA의 연장선에 있는 기관이다. 여전히 해외봉사활동에 관여하며 봉사단원 파견, 현지 시찰점검 등을 하고 있지만, 일선에서 한발 물러난 지금은 우리 지역의 농촌을 위해 열심히 고민 중이기도 하다. 고향인 화순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그의 꿈은 “청년들이 농촌에서 온전하게 가정을 꾸리고 함께 사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세계를 누볐던 그에겐 우리 농촌의 행복도 해외봉사의 성취감 못지않게 소중하다.

“많은 젊은이들이 기회가 있다면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새로운 환경만 찾으며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오늘 올곧게 서야 내일의 내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어 넓은 세상을 보되 내가 현재 서있는 땅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농업은 인류의 근원이자 블루오션”
허 동문의 삶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천상 농군’이다. 농가에서 태어나 해외농업봉사에 청춘을 쏟았고, 지금도 해외봉사 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살기 좋은 농촌을 위해 힘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농업이 도외시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울 뿐이다. 그가 생각하는 농업은 인류의 태동 때부터 인류의 생명과 직결된 ‘우리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미래에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이기도 하다. 그는 더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처럼 농업, 그리고 농촌 발전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농업은 미래 성장 동력이다. 지금 당장은 모르나 미래엔 식량 문제가 반드시 국가 간 분쟁을 야기할 것이다. 건강한 먹거리는 국가의 존폐와도 관련되는 것이기에 지금 젊은 세대들이 농업에 뛰어든다면 경쟁력 있는 블루오션이 될 것이다.”

허동운 동문은 ▲2001-2003 한국국제협력단 한국해외봉사단(인도네시아 작물재배) ▲2004-2005 중소기업청 해외시장개척요원 ▲2005-2006 한국국제협력단 동티모르사무소 ▲2007-2009 한국국제협력단 인도네시아 사무소 ▲2009-2010 한국해외봉사단연합회 광주전남지부장 ▲2010-2011 한국국제협력단 아프간PRT사무소 ▲2011-2012 광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공동대표 ▲2004 중소기업청장상 ▲2010 한국국제협력단 이사장상 ▲2011 외교통상부 장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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