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업 시간에 고수필 작품을 공부하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性)과 변하지 않는 이치(理)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 선인들이 남긴 많은 설(說) 작품들을 통해 예나 지금이나 우리 인간들의 고민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 본연의 선한 마음 곧 밝은 덕(明德)을 회복하여 사람답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봉설>은 술그릇에 있는 술을 빨아먹다가 결국은 술그릇에 빠져 죽은 벌의 모습을 보고, 인간의 지나친 욕심에 대해 경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촉견폐일설>은 촉나라 땅이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운무가 짙게 덮여 좀처럼 해를 볼 수 없었는데, 모처럼 해를 보게 되면 개가 이를 보고 짖었다고 하는??촉견폐일(蜀犬吠日)??의 고사에서 올바름을 일상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을 일상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두 작품은 우리에게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성(性)??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있다. 『중용』에서는 ??성(性)??을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주에서 ??성(性)은 곧 이(理)이다.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화생(化生)할 적에 기(氣)로써 형체를 이루고, 이(理) 또한 부여하니 명령함과 같다. 이에 사람과 물건이 태어남에 각각 부여받은 바의 이(理)를 얻음으로 인하여 건순(健順), 오상(五常)의 덕을 삼으니, 이른바 성(性)이라는 것이다??라고 해설하였다. 여기서 ??건순과 오상의 덕??이라고 하는 것은 건(健)은 양(陽)의 덕, 순(順)은 음(陰)의 덕, 오상(五常)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오성(五性)을 말한다. 한마디로 인간에게 부여된 성(性)은 곧 천명으로 인?의?예?지?신을 갖춘 선(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 두 작품에서는 인간의 이런 선한 본성이 지나친 욕심과 물욕에 가려서 화(禍)를 당하고, 세상이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다시 인간 본연의 성(性)을 회복할 것을 말하고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선한 본성을 회복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고금의 뛰어난 모든 문장들이 이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현대인들에게는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촉견폐일설>에서처럼 자신이 처한 환경에 익숙해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성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문제들을 한번 되돌아보고, 그 문제들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깊이 고민해본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치적인 문제에서 크고 작은 사회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지나친 욕심에서 빚어진 문제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이 아무리 선하다고 하더라도 자라나는 욕심까지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그런 욕심을 절제하고 자신의 선한 본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는 키울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며, 우리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는 이유이다.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회복하려 노력할 때 이 사회는 더욱 밝아지리라 감히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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