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 반듯한 글씨부터 둥그렇고 휘갈긴 글씨까지 사람의 손글씨에서는 사람냄새가 묻어난다.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순식간에 문자메시지가 도착하는 시대지만, 문자메시지에서 손편지가 주는 특유의 따뜻함과 매력을 느끼긴 어렵다. 생일이나 기념일 등 특별한 날이면 사람들이 카드나 손편지를 많이 주고 받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김상준 씨(독일언어문학·13) 역시 같은 이유로 손편지를 사랑한다.
그가 ‘자신만의 우체통’이라고 소개한 작은 쇼핑백 안에는 알록달록 예쁜 편지지에 쓴 편지부터 A4용지에 쓴 편지, 오래 되서 손때가 탄 편지, 종이 귀퉁이를 찢어 쓴 쪽지까지 크기와 디자인, 질감 모두 제각각인 편지들이 가득하다. 그중에는 항상 싸우기만 하던 여동생이 자신에 대한 고마움과 든든한 마음을 담아 쓴 편지, 여자아이가 수줍게 건네주었던 러브레터, 누군지도 모르는 마니또가 보낸 쪽지도 있다. 그는 가끔씩 이 편지들을 보면서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그리움에 젖기도 한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편지 쓰는 것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형식적으로 편지를 쓰고 선생님께 검사 받는 것 때문에 편지 쓰기를 제일 싫어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을 간 가장 친한 친구의 손편지를 받은 후 편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너는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다”는 친구의 진솔한 마음이 담겨있는 편지였기 때문이다. 이사를 가면 바뀐 전화번호로 꼭 전화를 걸겠다는 편지 내용과 달리 친구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지만, 아직도 이 편지는 친구의 온기를 느끼게 한다.

손편지가 주는 감동을 알게 된 그는 그 후 친구들 사이에서 편지 전도사가 됐다. 힘든 수험생 시절에는 서로의 꿈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내용의 편지도 있었다. 보통 남자들끼리는 편지를 잘 주고받지 않아서 처음에는 쓰는 그도 쑥스럽고, 받는 친구들도 ‘오글거린다’며 웃음 섞인 핀잔을 주었다. ‘소녀감성’ 이라는 놀림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곧 친구들도 그의 진심을 느끼고 감동을 받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는 어느새 그와 소중한 사람들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됐다.

그는 새해가 밝으면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최대한 많은 편지를 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는 헤어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작별 편지를 썼다. 대학에 와서 만난 새로운 인연들에게도 꼭 편지를 쓰고 싶다는 그는 자신만의 우체통에 더 많은 편지가 배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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