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회, ‘군대식 MT’ 비판 게시물 철거…“검사·허락, 고등학교와 뭐가 다른가”

▲ 왼쪽부터 김남신, 김현 교수, 이강서 교수, 장복동 교수, 백선경.

한 신입생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다”며 지난 10일 인문대 벤치(인벤)에 섰다. 그는 ‘낮술토론’이란 이름으로 토론회를 열었다. 주제는 표현의 자유. 이를 보기 위해 50여명의 학생이 모였다. 교수 3명과 대학원생 2명도 패널로 참석했다. 이 신입생은 무슨 일로 이런 자리를 마련할 걸까.

‘MT=(욱일승천기)?’, 부적절 논란
사건은 새내기 백선경 씨(철학·13)가 인벤에 붙인 게시물을 인문대 학생회가 제거하면서 시작됐다. 지난달 20일 백 씨는 이진영 씨(불어불문·13, 현재 자퇴)와 인벤에 ‘군대식 MT(Membership Training) 문화’를 비판하는 풍자물을 게시했다. 그런데 게시물에 담긴 ‘하켄크로이츠’와 ‘욱일승천기’가 논란이 됐다.

게시물은 ‘MT=(하켄크로이츠)?’, ‘MT=(욱일승천기)?’라고 그려진 그림과 함께 MT의 ‘군대식 얼차려’를 꼬집는 글로 채워져 있었다. 이를 두고 일부 학생들이 인문대 학생회의 페이스북을 통해 항의를 했다. 하켄크로이츠와 욱일승천기가 자극적이란 이유에서다.

인문대 학생회 측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내포되어 있어 학우들이 보기에 좋은 게시물이 아니었다”며 “인벤의 게시 공간 이외에는 게시물을 붙이면 안 된다”는 이유로 게시물을 제거했다.

그러자 ‘표현의 자유’를 두고 온·오프라인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당사자인 백씨와 이씨를 포함해 여러 학생들이 직접 인문대 학생회와 행정실을 찾아가 항의했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다는 게 요지였다.

“표현의 자유 침해”…‘낮술토론’까지
10일 ‘낮술토론’은 판이 커진 결과다. 앞서 논쟁과 함께 이 사건이 일부 언론에 의해 보도되면서 많은 이의 입길에 올랐다. 토론회에서 이강서 교수(철학)는 “유니버시티(university, 대학)와 유니버스(universe, 우주)의 어원이 같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대학이야말로 우주적 다양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의미”라며 “다수가 생각하는 것만 논의되면 대학과 학문, 사회의 발달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백선경 씨는 “검사받고, 허락받고 하는 등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는 대학의 모습에 실망했다”며 “MT뿐만 아니라 대학의 전반적인 문화가 뒤처져 있음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에 주현명 인문대 학생회장(사학·09)은 “게시물을 뜯은 것은 잘못이지만 환경관리는 필요하다”며 “게시물은 지정된 게시판에 붙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황선화 인문대 학생회 학술국장(사학·07)은 “학생회가 월권을 행사한 것을 사과한다”며 “인문대 벤치에 야외 게시판 설치, 플래카드 걸이 추가 설치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른 의견도 있었다. 박지민 씨(철학·08)는 “파급효과는 확실히 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공감할 정도의 선택이었느냐 고민해야 한다”며 “누구나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했어야 했다”고 발언했다.

군대식 MT 문화 도마 위
지난 10일 토론회에선 군대식 MT 문화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백선경 씨의 게시물과 더불어 지난 1일 <전대신문>이 군대식 MT 문화를 비판(‘아직도 기합받는 대학 MT’, <1517호>)하는 기사를 쓰면서 이 문제 역시 이슈가 된 것이다.

토론회에서 김현 교수(철학) “왜 꼭 MT에서 선배의 역할을 군대식 문화 행태로 규정하나”라며 “이 같은 모습은 공동체, 연대, 단합 등 아름다운 단어를 더럽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장복동 교수(철학)도 “MT 가서 기합 주는 게 ‘선배들에게 복종하고, 교수님 말씀 잘 들어라’는 식인데 대학생의 본분은 선배 말 듣지 말고, 교수 말 거역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자율이 삭제된 공동체는 그 기반이 제대로 구축될 수 없다”고 전했다.

한편 토론 후 온라인상의 의견도 이어졌다. 강경필 교육공간 오름 대표(철학·01)는 페이스북에 “(이미 군대식 MT 문화가 없어진) 철학과 사람들이 모여 부정적 인식을 말하는 데 그친다면 목표 없는 운동이 진행되는 것 아닐까”라며 “MT가 심각한 인권침해의 현장이라 생각하면 고발도 하고, 인권위원회에 진정도 넣어야 비로소 운동의 전선이 생길 수 있을 것”고 말했다.

조은별 씨(철학·12)도 페이스북을 통해 “(욱일승천기와 같은) 단적인 이미지만을 피력해 이 문제를 비판하려는 시도가 학생들을 이해시키는 데 다소 무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번 일이) 학내 소통을 부추긴 계기가 되었으니 단순한 해프닝으로 남지 않은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스럽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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