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 조카가 얼마 전 화장실 변기에 앉아 물었다. "이모 이게 꿈이야 진짜야?"조카의 깜짝 질문에 순간 당황하여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6살짜리 꼬마 아이의 입에서 어떻게 이런 말이 나올 수 있지?' 난 어린 조카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채현이 손을 한번 꼬집어 봐. 꼬집어서 채현이 손이 아프면 진짜고 아프지 않으면 꿈이야"난 어른들이 꿈과 생시를 구별할 때 하는 아주 단순한 행동을 그대로 일러줬다. 그랬더니 어린 조카는 정말 자기의 손을 꼬집고는,"아, 그럼 지금은 진짜네"라며 웃는다.

6살 조카의 질문에 당황한 이유는 나 역시 줄곧 그것을 궁금하게 여겨왔고, 서른이 넘은 지금도 여전히 그 답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한참 신나는 꿈을 꾸며 성장하고 있는 6살짜리 꼬마 아이와 나름 성인이 된 서른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지금도 난 의심해본다. 지금이 꿈인지 진짜인지. 이럴 땐 장자가 말한 호접지몽(胡蝶之夢)의 의미가 가슴 깊이 와 닿는다.

꿈과 현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우리는 날마다 잠을 자고 꿈(夢)을 꾼다. 기분 좋은 꿈은 깨면 아쉬워하고, 악몽은 깨면 다행으로 여긴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행복할 때는 이 순간이 깨지지 않고 지속되길 바라고, 불행하고 힘들 때는 이 모든 게 꿈이길 바란다. 꿈은 언젠가 깨어나리라는 것을 알기에 꿈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초연해진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죽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음을 알기에 결코 삶에 초연해질 수가 없다. 삶에 더 집착하고, 욕심 부리게 된다. 이것으로 보아 꿈과 현실의 차이는 꿈은 꿈으로 현실은 현실로 받아들이는 내 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서 있는 곳은 항상 지금, 바로 현재다. 이곳이 꿈이든 현실이든 간에 결국 살아가야 하는 건 똑같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도 꿈에서처럼 삶을 초연한 자세로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꿈이야 깨면 그만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쉽게 깨지는 것이 아니기에 그런 마음을 갖기가 쉽지 않음을 안다. 이 현실의 끝은 어디일까.

그건 아마도 인간으로서의 생을 마감하는 죽음일 것이다. 학부 수업 시간에 어떤 교수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그 교수님은 인간의 삶과 관련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죽는 게 죽는 게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해주셨다. '사람은 살아가고 있지만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으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요, 또 죽었지만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니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 그때는 한참'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때라, 교수님의 그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결국 현실에서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꿈과 현실은 분명 다르지만, 우리가 꿈을 꿈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죽음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가 삶을 좀 더 초연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렇게 생기 돋는 봄날 죽음을 생각한다는 게 좀 어울리지 않은 듯하지만, 우리가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때 오늘의 이 하루가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지 않을까싶다. 향긋한 봄날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살짝 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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