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녀석과 함께 한지 아홉 번의 계절이 지났다. 어느새 녀석은 그의 손때가 묻어 거뭇해졌지만 여전히 그에게 가장 소중하다. 그가 족히 수백 번은 만져봤을 녀석은 바로 ‘고등학교 3학년(고3) 때 쓴 스터디 플래너’다.

사진 앨범을 들춰보는 것처럼 그는 시간이 날 때면 녀석을 들춰본다. 녀석을 보고 있으면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그에게 녀석은 공부만을 위한 플래너가 아니었다. 그에게 녀석은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던 고3, 그 시절의 이야기들을 담은 앨범이다. 보통 앨범 속에는 웃는 모습, 울상 짓는 모습 등 다양한 모습의 사진이 담기는 것처럼 그의 녀석 안에도 열아홉 나윤성의 다양한 모습이 오롯이 담겨 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녀석의 한쪽 구석에 쓰인 말이다. 그는 곳곳에 명언들을 써놓았는데 좋은 글귀들을 읽으면서 대학 입시에 지친 자신을 다독였다. 그가 녀석을 쓰기 시작한 것도 고3이 되면서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야간자율학습시간이면 선생님의 눈을 피해 친구들과 빙고나 훈민정음 게임을 하던 철부지 남학생이 가슴 속에 ‘상담 심리사’를 꿈꾸면서 리얼리스트가 된 것이다.

마음을 잡고 공부를 시작한 그는 아침이면 깨알 같은 글씨로 공부 일정을 써놓고 공부가 끝나면 하나씩 지워나갔다. 공부가 싫증이 날 때면 잡지에서 사진을 오려 붙여 녀석을 꾸미거나, 책을 읽다 좋은 말이 보이면 옮겨 적기도 했다. 그에게 이런 시간들은 고3 시절 일종의 휴식이었다. 때론 그의 친구들이 녀석 안에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고3 동지들의 작은 선물인 셈이다.

무심코 남긴 흔적들이 어느 시절의 자신을 기억해주는 ‘무엇’이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에게 여전히 녀석이 소중한 이유도 그 시절의 그를 오롯이 기억해주는 유일한 녀석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열아홉을 기억해주는 녀석이 얼마나 기특할까.

사람은 나이를 먹을수록 추억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다. 이렇듯 추억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추억이 가득 담긴 그의 녀석. 녀석은 열아홉 고3 시절 생긴 또 하나의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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