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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희망들과 함께 살다■세상을 품에 안은 전남대인 47 - 권철현 속초시장애인체육회 보치아 전임지도자(철학·92)
글=나보배/사진=한별 기자  |  news@cnumed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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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1.08  12: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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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찾은 소쩍새마을에서 찾은 적성…“꿈을 이루는 과정에 함께 한다는 것이 행복”

   
   

“호원이, 성탄절에 밤늦게까지 놀았다며? 벌써 소문이 다 났던데.”

아침 열시가 되자 보치아 선수들이 하나 둘 씩 훈련장으로 몰려들었다. 권철현 동문은 훈련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 선수들 개개인에게 밝게 웃으며 장난스럽게 농담을 건넸다.

강원도 속초에서 속초시장애인체육회 보치아 전임지도자로 있는 권 동문의 직업을 간단하게 말하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코치’다. 보치아가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들의 종목이라는 이유로 대중들의 관심은 현저히 낮지만 그래도 “행복하다”는 권 동문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방향을 이끈 신문 기사

수능 점수에 맞춰 대학에 오는 우리가 그렇듯, 권 동문 역시 점수에 맞춰 전북대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전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그는 일주일 만에 수업에 나가지 않고 학교 밖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다시 공부를 했고, 우리 대학 철학과에 입학했다.

그가 우리 대학으로 온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우연히 우리 대학을 방문했을 때 “나무가 많고 호수까지 있는 학교가 예뻐서”였다. 철학에 관심이 있어 철학과에 진학 했지만 이 역시도 딱히 흥미롭지는 않았다. 그는 여전히 강의실 안 보다는 밖이 좋았고 책상의자보다는 잔디 위가 더 좋았다.

“밤에는 오므라들었다가 아침이면 꽃을 활짝 피는 수련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용지로 달려가 한없이 수련을 바라보기도 했다.”

졸업을 앞두고도 열심히 학교 밖을 여행 다니던 그는 2000년 가을, 훌쩍 제주도 감귤농장으로 떠났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인벤(인문대 벤치)에 앉아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중, 무작정 제주도 감귤농장으로 갔다. 대책은 없었지만 제주도에 가서 한 달 벌고, 한 달 살면서 지내보고 싶었다.”

하지만 농사 끝 무렵이었던 감귤농장에 일할 자리가 없어 제주도 여행을 하며 지내던 중 여관방에서 신문 기사 하나를 읽게 된다. ‘IMF 여파로 사회복지시설의 후원금이 대폭 줄어 어려움을 토로하던 강원도 원주 장애인공동체 소쩍새마을 관계자의 인터뷰’였다.

“기사를 보자마자 소쩍새마을에 가서 일 하고 싶었다. 곧바로 전화기를 들고 소쩍새마을에 전화했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더라. 하지만 학과를 묻더니 철학과라고 대답하자 한 번 와보라고 했다. 그래서 당장 짐을 싸 원주로 달려갔다.”

한 줄기의 빛, 칠레 동포의 후원

한걸음에 달려간 소쩍새마을이었지만 그곳에 있는 장애인들과 쉽게 어울릴 수는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장애인들을 동정하는 행동을 할까 걱정돼 다가가지 못했다. 이후 우연히 친구 손에 이끌려 장애인들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그들이 먼저 밝게 웃으며 “형, 무슨 일로 왔어”하며 인사를 건넸다. 놀라면서도 좋았다.”

1년 6개월 정도 일한 뒤, 소쩍새마을 선생님들과 마찰이 생겨 그곳을 나오게 됐다. 류시화 시인의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읽은 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인도를 여행하자던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인도로 떠났다.

“‘갤커다 마더테레사 하우스’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친구들 모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즐겁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반면 나는 무엇이든 꼼꼼히, 완벽하게 하려다 스트레스를 받고는 했다. 그제서야 스트레스를 받는 내 모습에 다른 사람도 분명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후 다시 소쩍새마을로 돌아가 일을 하다가 2006년, 소쩍새마을이 경기도 이천으로 이전하면서 일 하는 것을 그만둔다. 권 동문은 새로운 일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소쩍새마을에서부터 보치아를 지도하던 ‘정호원 선수’가 마음에 걸렸다.

보치아는 각 선수가 여섯 개의 공을 가지고 흰색 표적구에 가까이 던진 공에 대해 점수를 얻는 경기로 장애인올림픽 대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경기다. 중증뇌성마비장애인인 정호원 선수는 고등학교 1학년이던 2002년부터 전국대회 때마다 금메달을 휩쓸던 유망한 보치아 선수였다.

전국적으로 보치아 지도자가 없을뿐더러, 자신만을 믿고 있던 정호원 선수의 지도를 포기할 수 없었던 권 동문은 결국 정호원 선수와 함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훈련을 하는 것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보치아 실업팀’을 만들기 위해 기업과 시청을 찾아다녔지만 이들은 후원을 꺼렸다. 훈련을 위한 제대로 된 훈련장조차 얻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정호원 선수와 권 동문은 운동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 때였다.

“2006년 브라질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당시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칠레 동포 분에게 연락이 왔다. 일 년간 후원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비행기에서 예산이 없어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하는 보치아 선수들의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계기였다. 처음으로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정호원 선수는 국가대표로 발탁돼 2008년 베이징장애인올림픽에 출전해 개인전 동메달, 페어(2인조 경기) 금메달을 따냈다. 2012년 런던장애인올림픽에서는 개인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다양한 경험을 하라”

보치아는 장애인 경기 중에서도 중증 장애인들이 하는 경기다. 때문에 선수들이 밥을 먹는 것도, 목욕을 하는 것도 도와야 한다. 하지만 장애인과 관련한 모든 일이 그렇듯, 높은 급여를 받지 못한다. 아내와 아이에게 늘 미안하지만 이 일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누구보다도 하고자하는 것이 간절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디고, 그들의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스스로도 많이 배우고 있다.”

그래서 권 동문은 후배들에게 “다양하게 경험해 볼 것”을 강조했다. 우연히 신문 기사 하나만을 보고 달려간 그는 소쩍새마을에서 적성을 찾았고,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편지를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기에 써 줬더니 “처음으로 편지를 써 본다”며 행복해했다. 내게는 일상적인 일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처음으로 이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들도 여행은 물론 산행, 아르바이트, 인턴 등 다양한 경험을 하길 바란다.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이런 세상도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내게 기쁨을 주는 직업을 찾길 바란다. 분명 어디엔가 있을 그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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