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다. 한참 추웠다가 요 며칠 동안 칼날 바람 누그러지고 포근한 햇살이 비치는 듯해서, 봄이 찾아왔나 싶었는데…, 아니었다. 또 다시 매서운 눈보라가 불어 닥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한 겨울의 시작이다. 땅은 얼어붙고, 땔감 나무는 다 태워버렸다. 아껴뒀던 식량도 다 떨어졌다. 아! 어찌 이 겨울을 버텨나가야 하나.

박근혜씨의 당선을 두고 말이 많다. 왜 그녀가 당선이 되었을까? 한편에서는 이 풀리지 않는 물음을 어떻게든 설명해내야 하기에 세대별, 지역별 투표율을 분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재인씨 캠프의 선거 전략에서 낙선의 원인을 찾는 사람도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마음을 추스르고 ‘이성으로는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도 있고, 이왕 이렇게 되어버린 바에 마지못해 첫 여성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실낱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나는 좀처럼 생각과 상념들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투표용지에 어지럽게 흩어져있던 번호들. ‘찍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찍어야 하는’ 사람에게 눈 질근 감고 한 표를 던져야 하는 상황도 서글펐는데, 그 표마저 허공에 흩어져버렸다. 먹물들은 ‘정권은 유한하고, 선거는 지속되며, 시민의 일상은 무한하다’며 생활 정치의 복원이라는 훈계를 늘어놓지만 그걸 몰라서 이 지경에 이른 것인가! 하나 마나한 말들만 곳곳에 울려 퍼지고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제 어찌해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서로에게 묻지만,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래도 고생했다’, ‘서로 위로하자’, ‘다시 시작이다’ 토닥여줄 뿐, 어떻게 해야 위로받(하)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것인지, 그것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트위터에서 한 장의 사진을 봤다. 20일에 찍은 사진이었다.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으로 송전탑 위에서 65일째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최병승, 천의봉씨의 사진이었다. 덥수룩한 두 사내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대선 결과 따위 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목숨을 걸고 싸움을 벌이는 사람들, 그것도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 앞에서도 미소는 참 따뜻했다. 별안간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뭘 했다고 이렇게 분개하고 있는가. 최전선에 내몰린 사람도 이렇게 흔들림 없는데, 따뜻한 방에서 삼시 세끼 다 챙겨먹고 놀 거 다 놀면서 인터넷 기사나 클릭하고 뒤에서만 욕하던 것이 전부였던 나는, 뭐가 그리 화나고 억울한 것일까. 부끄러우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이렇게 그들을 만나면서 위로받고 있는 중이다.

생각하면 겨울을 버티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 만나서 체온을 나누며 함께 버티는 방법뿐이다. 먼저 만나자. 서로의 얼굴을 보고 함께 울고 웃고 신나게 떠들어야 생활 정치를 복원하든 뭘 다시 시작하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17일부터 대학본부 앞 컨테이너에서 비정규교수 노동조합 소속 선생님들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던데, 오늘 밤에는 간단한 야참이라도 싸들고 만나러 가봐야겠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