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제로 인식해야 해결할 수 있는 학교폭력

2009년 9.4%, 2010년 11.8%, 2011년 18.3%. 학교폭력 피해율이 증가하고 있다. 학교폭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빈번히 들려온다. ‘Book&Movie, 실화에 빠지다’ 마지막 세 번째 주제는 ‘학교폭력’이다. 소개할 <놋쇠 황소>와 <엘리펀트>는 실제 있었던 학교폭력 사건을 작가, 감독이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엮은이

 

방관자·피해자·가해자…나는 누구?
두 남자의 대화로만 이루어진 <놋쇠 황소>는 김종일 작가의 작품이다. 겨우 20쪽의 분량을 가진 단편소설 <놋쇠 황소>는 독자로 하여금 작품 세계에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단순히 실제 학교폭력 사건에 집중하는 여타작품들에 반해 ‘미래에 가해자와 피해자가 만나면 어떨까?’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됐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 작품은)내 학창시절 경험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썼다”고 밝혔다. 그는 “내가 직접 겪은 일도 있고 옆에서 지켜본 일도 있다”며 다만 “두 친구가 동창회에서 재회하는 설정이나 차안에서 일어나는 복수담은 전적으로 상상력에서 비롯된 허구”라고 설명했다.


에어컨도 작동하지 않고 창문도 열리지 않는 조그마한 자동차. 찌는 듯 한 더위 속에서 학창시절 잘나가는 일진 박규완과 그에게 괴롭힘 당하던 조병구는 동창회를 끝내고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집으로 향하던 도중 조병구는 박규완이 과거 행했던 일들을 계속 말하지만 박규완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한다. 나중에는 “그만 말하라”고 소리까지 지른다. 학창시절 당했던 일들을 가슴속에 묵혀두며 분노와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온 피해자 조병구. 그러나 가해자 박규완은 “그렇게 시시콜콜한 것까지 어떻게 다 맘에 담아두고 사냐?”고 말할 뿐이다. “‘때린 놈은 다리 못 뻗고 자도, 맞은 놈은 다리 뻗고 잔다’는 옛말은 틀렸다”고 조병구는 말한다. 결국 조병구는 박규완을 집으로 바래다주는 길에서 자신만의 복수를 하고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피해자는 기억하는데 왜 가해자는 쉽게 잊어버리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은 <놋쇠 황소> 첫머리에 인용된 영화 <올드보이>의 한 대목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이 그날 일을 기억 못하는 진짜 이유가 뭔지 알아? 그건 말이야. 그냥 잊어버린 거야. 왜, 싱거운가요? 하지만 사실이야. 당신은 그냥 잊어버렸어, 왜? 남의 일이니까.”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고통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남의 일이니까.” 주변을 둘러보면 피해자를 제외한 거의 전부가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잊어버리고 관심 갖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방관자였던 ‘나’는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학교폭력을 행하는 가해자도 될 수 있다.

 

눈 뜬 장님, 내 모습은 아닐까?
영화 <엘리펀트>의 제목은 인도의 오래된 불교 설화 ‘코끼리와 장님’에서 유래됐다. 코끼리의 꼬리만 만진 장님은 “가늘고 길면서 털이 나있어”, 코만 만진 장님은 “주름지고 꿈틀거리며 끝에 구멍이 있어” 등 코끼리에 대해 설명했다는 이야기다. 같은 것을 보아도 자신의 시각에 들어난 것만 진실로 여기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영화 <엘리펀트>는 자신들의 시각만으로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일으킨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엘리펀트>는 옴니버스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버지와 차를 타고 평상시처럼 얘기하는 남학생의 모습, 친구들과 장난치는 학생들의 모습, 게임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 등을 각 인물의 시각으로 바꿔서 보여준다. 여상스런 모습들은 흡사 태풍의 눈처럼 적막하고 긴장감을 줬으며 그 이후 일어나는 총기난사는 절정을 이뤘다.


어느 쪽을 옹호하지도 비판하지도 않고 사건을 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영화 <엘리펀트>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시각에서 사건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시각들까지 고려하게 되면서 더 풍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학교폭력’과 관련한 많은 언론보도를 보고 처음엔 “어떻게 저런 일이!”라고 놀라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잠잠해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학교폭력’만큼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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