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인 경제 불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스는 국가 부도 위기에 허덕이고 있고, 영원할 것 같던 세계 경제 대국 미국도 흔들리고 있다. 화려하고, 풍족해 보이기만 했던 자본주의는 빈익빈 부익부, 빈곤의 대물림, 노동자들의 착취 등 갖가지 사회 문제를 낳았다.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 미국의 경제위기는 곧 우리들의 삶의 위기로 번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전대신문은 자본주의 사회가 갖는 근본적 문제는 무엇인지, 해쳐 나갈 방안은 없는지 살펴보려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유례없이 기술과 생산성 발전을 가져왔고, 그로인해 사람들에게 더 편리한 삶을 제공해 주었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생산력의 발전을 가져왔는지, 더 나은 삶을 가져온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세심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산업혁명으로 인해 비약적인 생산력 발전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에 따라 동시에 개개의 작업 자체는 파편화되었고, 작업내용은 정말 몰두하기 힘들 정도로 생산자 자신의 욕망이나 목적, 판단과 분리되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는 모든 이득을 오직 하나 잉여가치로 전환시키는 데만 몰두했기 때문에, 생산조건 전체는 전지구적 규모에서 극단적으로 과잉착취당하고 파괴되었습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성벽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침범되어서는 안 될 성역으로, 좀처럼 무너지지 않을 거대한 성벽으로 존재합니다. 인간 스스로의 욕망이 이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최근 조그마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후배로부터 선거일과 같은 법정휴일에도 출근을 해야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의 사장은 일이 바쁘니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출근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후배는 몇 명 되지도 않는 직원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사장의 어려움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냐’는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다고 합니다.

절망적인 1대 99의 사회
이 회사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노동자들을 쥐어짜는 사업자들을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이 아니더라도 소득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 자영업자들 역시 광범위하게 존재합니다. 그러니 굳이 말하면 이와 같은 욕망과 이를 충족하기 위한 부정은 재벌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더 많은 것을 가질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퍼져있다는 점이고, 이런 광범위한 의식이 과정에서의 부정과 비리까지 합리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자영업자부터 중소기업, 재벌에 이르기까지 아니 굳이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고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념’이요, 무의식적 ‘에피스테메’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태도에 대해, 욕망의 계선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로 계층 간, 소득 간 불균형과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대 80의 사회에 대한 우려를 넘어 10대 90, 1대 99의 사회로 가고 있지 않느냐는 탄식이 터져 나오고 있는 현실에 우리는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자본을 조종하는 '욕망'
2011년 개봉한 ‘쿠바의 여인’이라는 다큐멘터리에는 주인공인 쿠바 남성이 한국에 와 얼마간 머물며 한국사회의 욕망에 혀를 내 두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본주의는 도대체 어디까지 소유하려고 하고, 소비하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쿠바에서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의 혜택을 받으며 상대적으로 덜 경쟁적이고 덜 이기적인 삶을 살아온 주인공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질문인지 모릅니다.

물론 다큐멘터리가 쿠바를 마냥 긍정하지만은 않습니다. 쿠바가 부딪히고 있는 여러 문제들, 이를테면 ‘가난한 평등’과 자기검열이 내면화되면서 억제될 수밖에 없는 표현의 자유, 평등이란 이름으로 반납한 자유와 소비욕망, 성행하는 암시장, 일하는 척하는 사람들과 월급을 주는 척하는 정부 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인들은 춤과 노래로 삶을 즐기며 살아갑니다. 적어도 자본과 욕망에 포섭되어 자신을 잃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기에 주인공인 쿠바 남성도 앞의 질문을 던진 것이겠습니다.

사회적으로 구성된 인간의 욕망
‘쿠바의 여인’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보듯이 욕망은 인간의 근원적인 본성이라기보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인간의 욕망은 사회적으로 조정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겠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인 생존과 활동을 위해 일정한 의식주를 소유해야 하고, 생산 활동을 벌여야 합니다. 당연히 더 많은 도구와 더 많은 자본을 소유하고자 할 것입니다. 따라서 재산을 모으고, 땅을 매입하고, 새 집을 장만한다고 해서 그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일정정도 스스로의 근면을 일깨우고 부와 발전을 축적하는데 이바지 한 측면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 의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곤란과 궁핍을 겪는다면, 이들의 희생이 계속된다면 이에 대한 책임은 나눠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욕망이 불합리한 과정을 통해 충족되었다면 법적, 사회적 제재가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함은 물론이겠습니다.

새로운 '공동체' 구성 필요
우리 사회는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개인중심적인 욕망에 빠른 속도로 사로잡히고 있습니다. 정부와 제도, 심지어 교육마저도 이를 당연시하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시대와 사회를 읽는 눈은 어두어지고,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낮아지고 있습니다. 오로지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돌격 앞으로 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우리사회가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회로 한발 더 나아기 위해서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지나치게 과도한 욕망과,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정까지 당연시하는 의식과 풍토를 반성하고 개선해야 합니다. 나아가 새로운 ‘협동방식’을 구성하고 새로운 종류의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