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역신문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 중 정기 구독자 수는 몇이나 될까? 정기 구독이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우리는 몇 번 지역신문을 들춰볼까. 이 기획은 총 3번의 연재에 걸쳐 보도된다. 지역신문의 역사, 처참한 현 상황, 활력 불어 넣을 수 있는 방안 등의 순이다. ‘지역신문 살리기’-<상>에서는 지역언론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엮은이

지역언론의 역사
조선이 전국을 8도로 나누면서 지역 단위의 소통망은 형성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의 소식매체로는 관 주도의 조보(중앙지)와 영기(지역지)가 존재했다. 이들은 소식지 형태로 발행됐다. 이때부터 정보의 흐름과 세상소식은 사회의 물적 토대가 됐고 이는 곧 돈의 흐름과도 이어졌다. 정보가 필요해지면서 돈을 주고 언론지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광주전남지역의 최초 근대 신문은 <목포신보>다. <목포신보>는 1889년 발간됐다. <목포신보>는 일본인들에게 상업적인 소식을 제공했다. 이후 1910년 <광주신보>가 탄생했다. 1941년에는 <목포신보>와 <광주신보>가 통합돼 <전남신보>가 됐다. 

해방이후 <전남신보>의 유일한 한국인 김남중 기자가 신문발행을 주도했다. 이로써 광주전남지역의 최초 지역신문은 <전남신보>가 됐다. 잇따라 <광주민보>, <조선중보> 등도 발간됐다. 이후에 <전남신보>는 <호남신문>으로, <광주민보>는 <동광신문>으로, <조선중보>는 <광주신보>로 발전했다.

박정희 군부독재가 들어선 후에는 보수적 성향의 신문들이 언론의 주축으로 남았고 1980년대 들어선 신군부 독재 시절 언론계는 800여명이 넘는 기자가 해직되는 등 엄청난 회오리를 겪게 됐다. 또 언론통폐합을 포함해 군부는 언론을 장악했다. 그 근거로 ‘언론기본법’을 들 수 있다. 전두환은 언론기본법을 바탕으로 1도 1사 체제를 고수했다.

‘1도 1사’와 <광주일보>
전두환의 1도 1사 체제로 광주전남지역신문의 양대 축이었던 당시 야당지-<전남매일>과 당시 여당지-<전남일보>가 보수 신문이었던 <전남일보>로 통합되면서 <광주일보>가 탄생하게 된다. <광주일보>는 김남중 기자의 아들 김종태가 물려받았다. 경쟁언론사가 없어 <광주일보>는 단일체제로 독점구도를 유지했다.

1도 1사 체제를 포함한 언론기본법은 1987년 6월 항쟁에 의해 무너진다. 언론자유에 의해 1987년 언론기본법이 폐지가 되고 1988년부터 군단위의 신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 충청도에는 <홍성신문>이, 충청북도에는 <옥천신문>이, 전라남도에는 <해남신문>이, 경상남도에는 <남해신문> 등이 탄생했다. 이는 ‘군민주’ 신문으로서 현재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언론기본법 폐지 이후 1988년 <무등일보>가 조간신문으로 창간됐고, 1989년에는 <전남일보>가 석간 신문으로 창간됐다. 그리고 1991년 <전남매일>이 탄생했다. 독주하던 <광주일보>에게 경쟁신문이 하나둘 생겨나면서 당시 신문사들은 치열한 경쟁으로 보도기사를 내보냈다. 이처럼 언론자유화 이래 IMF가 터지기 전(1988~1997년)까지는 지역신문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시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IMF 경제위기 이후 각 신문사들은 경영상의 어려움으로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신문사의 재정위기, 불어나는 신문사 수 등으로 호남지역의 지역신문들은 앞서 말한 ‘궤멸상태’로까지 이르게 된다.

현재 호남에만 118개의 신문사(주간지+일간지)가 있다. 이는 충청지역 87개, 강원지역 20개, 영남지역 134개, 경인지역 144개와 비교해봤을 때, 인구대비 엄청난 신문들이 홍수처럼 넘쳐있음을 잘 알 수 있다. 한정된 재원에 밥그릇만 늘어나 자본의 흐름에 신문사의 존폐가 달려있어 자유로운 기사 쓰기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러한 신문들을 지역민들은 외면할 수밖에 없다.

이의정 교수(신문방송학·커뮤니케이션)는 “지역언론이 왜 필요한지 크게 와 닿지 않을 정도로 지역신문은 침체기에 빠져있다”며 “양분, 물, 햇빛, 토양이라는 한정된 자원 속에서 나무만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발생된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숙고형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깊게 들여다보는’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지역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지역에 맞는 보도방식 등을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호남스러움’을 간직한 보도기법이 없었기 때문에 광주전남의 언론은 쉽게 무너져 내린 것”이라며 “‘난장판’이 돼버린 지역언론을 복원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지역성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역신문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병폐에 대해서는 다음호에 계속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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