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맛에 있어서 보통 음식맛과는 다른 특별한 맛이란 의미의 순우리말로 남도 음식에만 사용되고 있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게 요즘에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보인다. 모든 것이 거래의 대상이 되는 시점에서, 과연 무엇이든 사고파는 것은 바람직한지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고 다리도 아프지만 놀이기구를 타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누군가 새치기를 한다면? 결코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놀이공원이 새치기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국의 많은 놀이공원들이 일반 입장료의 두 배 가량을 내면 줄의 맨 앞으로 갈 수 있는 허가증을 준다. 그러니까 정가를 지불한 사람들은 부가금을 지불한 사람들의 새치기를 묵인해야 한다. 그래서 놀이공원을 포기하고 바로 옆 빌딩의 초고층 전망대에 오르려고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이 빌딩은 너무나 유명해 전망대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많고,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헌데 여기서도 우선 탑승권을 판매하고 있었다. 헐!

▲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점점 사라진다

우리가 회사를 다닌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회사가 개인의 동의도 없이 생명보험에 가입해둔다면 기분이 어떨까? 이는 실제 미국의 몇몇 회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직원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해 직원이 사망할 경우 가족도 모르게 회사가 보험금을 챙기는 것이다. 물론 회사는 직원이 사망할 경우 그들의 자리를 다른 인물로 대체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상쇄하기 위한 대비책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우리가 점차 나이가 들면서 회사는 우리가 빨리 사망하길 기대하지 않을까? 또 직원이 빨리 사망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들의 건강과 안전을 강구하는데 인색하게 구는 건 아닐까? 우리의 생명이 기업의 돈벌이 대상이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러한 예는 어떤 대상에 시장논리 혹은 상품화가 적용되는 구체적 사례이다. 그러니까 새치기나 생명이 상품이 됐다는 말이다. 마이클 샌델은 그의 최신작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통해 세계가 점차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러면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지 않느냐며 수많은 사례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다.

센델이 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오늘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거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하루 82달러의 추가 비용을 지불하면 죄수는 깨끗하고 조용한 개인 감방으로 옮길 수 있다. 인도에서는 여성의 자궁이 합법적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6,250달러를 지불하면 아기를 대신 낳아 줄 대리모를 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유럽연합은 탄소배출 시장을 운영해서 기업들이 탄소배출권을 사고 팔 수 있게 한다. 환경을 오염시킬 권리를 사고 팔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부 명문대에서는 학생이 자격 미달이어도 부모가 상당 금액을 대학에 기부하면 입학을 허락하기도 한다. 입학허가증도 돈만 주면 얼마든지 살 수 있다.
 
또 센델은 이러한 유형의 재화 외에 인간의 마음도 사고팔 수 있다고 말한다. 중국 톈진에는 ‘사과 대행 행사’가 있는데, 이 회사에 돈을 내면 서먹해진 연인이나 관계가 틀어진 동업자 등에게 대신 사과를 해준다. 이런 회사가 존재한다는 것도 어이가 없지만, 고용된 사람이 대신하는 사과로 마음이 풀릴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또 미국 결혼식에서는 피로연에서 신랑의 가장 친한 친구가 진심어린 축사를 하는데, 이마저도 돈을 주면 구매가 가능하다. 대충 신랑 신부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3~5분 길이로 전문가가 대필한 맞춤형 축사를 149달러로 구매할 수 있다. 결혼식 날 친한 친구의 축사에 마음 훈훈해지고 코끝 찡해지는 감동이 돈으로 구매한 것을 알았다면, 신랑의 기분은 어떨까? 사과나 우정도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고 하니, 정말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일까?

▲ 인도에서는 여성의 자궁이 합법적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6,250달러를 지불하면 아기를 대신 낳아 줄 대리모를 구할 수도 있다.

돈을 주고 사고파는 게 서로에게 이익이다?

앞서 소개한 사례들을 보고, 돈으로 무엇이든 사고파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됐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돈을 주고 사고파는 것이 구매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말한다. 무슨 이야기일까?

여러분은 기부금을 내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부자 학생 한 명을 입학시키고 그가 낸 기부금으로 가난한 학생 여러 명에게 장학금을 줄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이는 부자 학생과 가난한 학생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닐까? 부자 학생 입장에서는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이고, 가난한 학생 입장에서는 학비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일이 없을 테니 서로에게 좋은 일이 분명해 보인다. 경제학자들이 볼 때 이 같은 사례는 집단의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을 향상시키는 행위로 파악된다. 왜냐하면 시장에서의 거래가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똑같이 이익을 제공하고 있고, 손해를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2005년 미국 유타 주의 30세 여성은 1만 달러를 받고 자기 이마에 온라인 카지노 웹사이트 주소를 영구 문신으로 새겨 넣었다. 미혼모였던 이 여성은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열한 살짜리 아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고, 이에 자신의 이마를 광고판으로 제공한 것이다. 마침 ‘신체 광고판’으로 광고 효과를 노리고자 했던 한 업체와 의견이 합치하면서 이마 광고는 성사될 수 있었다. 이 경우 역시 기부금 입학과 마찬가지로 거래 당사자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바람직한 행위로 보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모든 것을 사고파는 것…무엇이 문제인가?

▲ 우리는 '돈이면 다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리고 세상은 그것에 가까워 지고 있다.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기부금 입학은 집단의 행복이나 사회적 효용을 향상시키지 못한다. 부자 학생이 기부금을 내고 입학하면 성적이 우수하지만 가난한 학생에게는 명문대 입학의 기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가난한 학생에게는 대학 입학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애초에 부자 학생의 기부금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거다.

기부금 입학에 대해 샌델 교수는 ‘부패’와 ‘불평등’의 문제를 들어 반론을 제기한다. 샌델은 “삶 속에서 나타나는 좋은 것에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그것을 오염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기부금 입학을 허용하면 대학의 가치가 손상되고 품격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당한 과정을 거쳐 입학한 사람들의 명예에도 먹칠을 하게 된다. 또한 대학 입학 자격 따위를 상품화 하여 사고팔면, 부자들에게는 편리함을 주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부금 입학은 공정하지 못하다.

자신의 이마를 광고판으로 제공한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거래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자발적 행위였는지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아들의 교육을 해결하기 위해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부모가 자기 이마에 광고 문신을 새겨 넣기로 동의한 것을 어떻게 온전히 자발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진정으로 자발적 거래란 재화를 사고파는 배경 조건이 평등하고 누구도 경제적으로 압박을 당하지 않을 때에만 형성 될 수 있는 것이다.

시장만능주의, 성찰이 필요하다

▲ 마이클 샌델.

대학입학자격을 팔아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면 좋은 일이 아닐까? 한류스타가 군에 입대하는 대신 외화를 벌어 군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기부하면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까? 책을 많이 읽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상금을 주면 효과적이지 않을까? 경제학자들은 불평등하거나 강압에 의한 거래만 아니라면 시장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샌델은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반박한다. 모든 것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되면, 시민 참여, 공공성, 우정과 사랑, 명예 등 우리 사회의 중요한 덕목이 사라질 거라고 한다. 삶에서 중요하고도 가치 있는 것이 상품화되면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의 가치가 변질되거나 저평가되어 우리 삶은 방향을 잃고 흔들릴 것이다. 부모에게 감사 편지를 쓸 때마다 아이에게 1,000원씩을 준다고 치자. 그러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려는 본래의 의도는 사라지고 아이들은 돈을 받기 위해 편지를 쓸 것이다. 이는 시장적 가치가 비시장적 가치를 변질시킨 것이다. 시장만능주의가 초래한 병폐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샌델은 시장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순응할 것이 아니라 이런 사안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우리가 이를 허용할지 말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돈으로 사려 해서는 안 되는 것들’, ‘돈으로 사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음을 인식하고 이를 시장적 질서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책에서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답을 가르쳐주기보다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독자들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해준다. 그의 질문들을 통해 결코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일지 우리 스스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