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는 맛에 있어서 보통 음식맛과는 다른 특별한 맛이란 의미의 순우리말로 남도 음식에만 사용되고 있다.

“2004년 11월 대선에서 민주당의 패배는 많은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순간 모두가 의기소침해졌지만, 곧 엄청난 반향이 잇따랐다. 수백만 진보주의자들은, 이것이 대체 어떻게 된 일이며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고 싶어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중)

▲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저명한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쓴 이 책은, 자신의 책 <도덕의 정치>에서 전개한 이론을 바탕으로, 미국 민주당 지지자와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엮어낸 간략하고 실용적인 지침서다. 이 사실이 말해주는 것은, 이 책이 철저히 민주당의 승리, 혹은 진보진영이 어떻게 해야 보수진영에 승리할 수 있을까 하는 관점에서 씌어졌다는 점이다. 그의 의문은 이것이었다. 왜 가난한 서민들이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 공화당에 투표하는 것일까? 대체 진보진영은 왜 보수정당에게 지는 것일까? 물론 레이코프의 이론은 철저히 미국 정치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한국 정치의 움직임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변화를 꾀한다면 '프레임'을 재구성하라
흔히 우리는 사람들이 ‘자기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선택해서 투표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투표결과를 보면 의외의 결과가 속출한다. 2003년 미국의 유명한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공화당 후보로 주지사 선거에 나와 승리를 거뒀다. 당시 캘리포니아 노조는 현임 주지사였던 민주당의 그레이 데이비스가 서민들과 노동자에게 훨씬 유리한 정책 기조를 취하고 있다고 홍보했지만, 데이비스가 자신들에게 더 유리할 것이라고 대답한 노조원들이 막상 선거에서는 슈워제네거에게 투표했다.

한국 정치를 들여다봐도 비슷한 결과가 속출한다.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명박 후보는 압승을 거두었다. 한나라당의 정치기반은 노동자, 농민, 서민세력이 아닌, 안정적 부유층과 재벌을 비롯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고용안정보다는 기업 활동의 자유를 추구하고, 분배와 지속 가능한 성장보다는 신자유주의적 경쟁을 통한 가시적 성장을 추구한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오지의 농촌에서도, 대규모 공업단지에서도, 서울의 서민지역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왜 서민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와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것일까?

흔히 진보진영의 사람들은 ‘사실’을 알고 이해하기만 하면, 정치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준다면, 거짓 없는 정직한 정치를 한다면 돌아설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이 책의 저자 레이코프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조지 레이코프의 인지과학에 의하면, 국민들은 진실을 폭로한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다 수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정체성과 가치관에 따라 프레임을 구성하고 이 프레임에 따라 생각하고 세상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는 불가사의한 국민의 투표 경향과도 관련된다.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한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투표한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 싶은 대상에게 투표한다.”

▲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공화당 후보 내외(왼쪽)와, 2007년 우리나라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 내외.

이는 자신에게 유리한 후보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가치관에 따라 자신이 동일시하고픈 후보를 선택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을 설득력 있게 제시해도, ‘생각의 틀’ 즉, 프레임에 그것이 맞지 않으면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은유와 프레임
조지 레이코프는 언어학자로서 1970년대부터 ‘은유’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보통 은유라고 하면 누구나 국어 시간에 배운 ‘은유법’을 떠올릴 것이다. 이처럼 은유는 문학에서의 특수한 수사법이라고 생각되어 왔는데, 그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개념체계가 본질적으로 은유적인 성격을 띤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시간에 대한 표현을 보면, ‘시간을 낭비하다’ ‘시간을 절약하다’ ‘시간을 투자하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처럼 표현하는 밑바탕에는 ‘시간은 돈’이라는 은유적 개념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은유는 정치 이데올로기의 인식과 관련해 하나의 새로운 개념 ‘프레임’이라는 것으로 발전해간다. 프레임에 대한 그의 정의는 이렇다.

“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수행하고자 수립하는 제도를 형성한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은 이 모두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책을 집어 들고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 제목으로는 좀체 어떤 책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미국의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라는 부제를 읽어야 정치에 관한 책인가 보다 가늠한다. ‘코끼리’는 미국의 공화당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여러분에게 누군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한다면, 아마 누구든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코끼리의 모습일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말라는 주문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는 문장의 제일 앞머리에 나오는 코끼리라는 익숙한 형상을 생각해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가 유추해낸 교훈은 이렇다. 경쟁자의 프레임을 공격하지 마라. 그것은 그들의 메시지를 더욱 강화해줄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자신의 가치관, 소망, 사명을 담은 프레임을 구성하되, 상대방의 프레임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순간, 그들의 생각이 바로 공론의 중심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치상황을 예로 들어보자.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보수 세력들은 노무현 정부가 기존 조세제도를 개혁하려 한다면서 그를 좌파정권이라고 비판했고, 부자들의 이해에 반하는 그의 조세정책을 ‘세금폭탄’이라고 비유했다. 물론 당시 한국의 주류 보수언론 매체들은 이와 연관된 통계학적 자료조차 없이 이러한 주장을 부풀려 보도했고, 많은 사람들은 노무현이 부자들에게 불리하고 기업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조세제도를 수립하려 했다고 믿게 되었다.

조지 레이코프.
조지 레이코프.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이와 관련된 논의를 전개할 때 진보진영이 자신들의 조세개혁이 “세금폭탄이다, 아니다”라고 이야기 한다면 이것은 이미 세금을 ‘폭탄’으로 설정해버린 프레임으로 들어가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미 코끼리의 형상에 빠져버리듯 아무리 사실적 자료와 통계학적 자료를 들이밀어도 이미 그렇게 믿어버린 사람들의 생각을 돌리기 힘들다. 따라서 이럴 때는 애초 세금폭탄이라는 프레임을 완전히 해체하고, 자신들이 생각하는 세금의 의의, 납세의 필요성 등을 이야기함으로써 ‘자신들의 프레임’을 새롭게 창조한 후 증세나 감세에 대해 논의를 전개했어야 했다.

“프레임을 재구성한다는 것은 대중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것은 상식으로 통용되는 것을 바꾸는 것이다. 프레임은 언어로 작동되는 것이기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을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가 요구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상대방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신의 ‘프레임’을 구축하라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캘리포니아 주지사 당선사례는 프레임의 중요성을 잘 파악했던 공화당의 승리인 동시에, 그와는 반대로 그 중요성을 간과했던 민주당의 실패로 설명될 수 있는 사건이다. 레이코프는 “상대편을 이기려면 상대의 프레임을 사용하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의 경우를 보자. ‘경제 살리기’ 프레임은 보수 정당이 지난 정권을 비판하고 당의 공약을 내세우기 위해 많이 사용했던 말이다. 그런데 진보 세력에서는 오히려 이 단어를 자신들의 담론에 자주 언급함으로써 스스로 지난 정권에서 ‘경제가 죽어 있었음’을 시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는 오히려 보수 세력이 창안한 프레임을 강화시켜주고, 이를 대중들에게 인식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진보 세력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보수의 프레임이 담긴 주장을 언급해 그들의 담론을 반박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을 포함한 보수 세력은 노무현 정권 시절 ‘코드 인사’, ‘잃어버린 10년’, ‘경제 파탄’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공세를 퍼부었다. 이러한 공세는 다시 대선에서 유권자로 하여금 경제 살리기 프레임이 형성되도록 만들었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유권자들은 보수주의가 내세운 프레임에 기초해 사고하게 되었고, 아무리 진보세력이 보수의 비판이 부당함을 지적하고, 설명해도 마이동풍이었다. 이 때문에 진보 세력은 자신들의 중요 가치인 도덕성, 공공성, 형평성 등마저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진보 세력은 프레임 재구성에 실패해 보수 세력과의 경쟁에서도 패배한 것이다. 진보 세력은 이기기 위해 진보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진보적인 프레임을 재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깨우쳐야 한다. 즉, 보수진영의 프레임이 담긴 기존의 언어나 슬로건을 사용하지 않고, 진보적 가치와 동시에 대중의 요구가 반영되어 있는 현실적인 프레임을 내세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프레임을 증명한 사례가 있다?

돌아오는 대선, 어떤 프레임이 대선판을 주도할 것인가.
돌아오는 대선, 어떤 프레임이 대선판을 주도할 것인가.

미국의 공화당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생산해내고 있다. 예를 들면, 조지 부시의 ‘세금 구제(Tax relief)’ 방안이 있다. 세금에 구제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세금은 고통이다. 이 때문에 그것을 없애주는 사람은 영웅이며, 그것을 방해하는 자는 악인이다’라는 프레임이 생겨난다. 그 실상이 부자와 대기업에 세금 감면을, 서민들에게는 증세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할지라도 말이다.

<중앙일보>에 ‘양극화 해소, 중산층 되살리기인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청와대와 중앙일보의 토론회 기사였는데, 이 제목에서 프레임을 선점하려는 정치적 경합이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기사는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을 공격하면서 당시 진보측에서 사용하고 있던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진다’는 의미를 담은 프레임인 ‘양극화’를 쓰지 않고, ‘중산층 되살리기’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맞받아치는 내용이다. 양극화 그 자체를 공격했다면 상대방의 프레임 안에서 치고받는 결과가 되어 상대의 프레임을 공고하게 해주었을 테지만, 이것을 중산층 되살리기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바꿔 말함으로써 양극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수진영은 오히려 양극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며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국민들에게 더욱 다가가게 되는 효과를 얻었다. 레이코프의 주장대로 상대방의 프레임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프레임을 재구성한 것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간 것이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경구를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프레임을 사용하여 그들의 주장에 대항한다면, 그들의 프레임만 더욱 굳게 다져주고 패배할 것입니다.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진실을 우리의 관점에 맞추어 효과적으로 프레임을 구성해야 합니다.”

보수, 진보 등의 논의가 등장하기에 정치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지만, 핵심은 “주도권을 가지기 위해선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일 것이다. 프레임을 장악하는 자가 세상을 움직이고, 마침내 승리한다고 이해한다면, 긴 역사속의 많은 정치가들이 왜 그렇게도 미디어와 대중매체, 언론 등에 연연해하는지도 이해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을 통한 왜곡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뚜렷한 주관과 판단을 위해 고민해야 한다. 어쩌면 그것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만의 효과적인 프레임을 고민하고 선점해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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