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궂은 날도 있기 마련이지만, 요즘처럼 부끄러운 때가 또 있었을까 싶다. 우리 대학교가 선도하여 어렵게 일구어낸 ‘대학 민주화’의 역사가 정부의 치졸한 겁박에 단숨에 거덜이 났다. 우리대학 구성원들의 총의로 뽑은 총장당선자가 검찰이 뒤를 캐고 수사에 나서자 황급히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런 새가슴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겠다고 나서서 우리를 이토록 맥을 놓게 만들었는가.

우리 대학은 지금 저잣거리 사람들까지 손가락질 해대는 대상으로 나락해버렸다. 대학의 생명인 자유·자존의 정체성은 입에 올리기도 어렵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총장 선거를 다시 하라는 정부의 지시가 떨어지자 13명의 교수들이 나서서 자신이 적임자라고 목청을 돋우고 있다. 우리 대학교 총장 직선제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란다.   

대학의 아픈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우리는 그동안 세월을 자신 속에 가두어두고 누리는 데만 골몰하지 않았나 하는 자책이 가슴을 친다. 누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나에게만 직접 닿지 않으면 눈감아버린 나날들이 결국 폭약이 되어 우리를 기습하고 있다는 후회도 있다. 물론 이 시점에서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대학의 학생으로서 젊은 날을 보내고 또 얼마간을 교수라는 신분으로 편하게 살아온 필자로서는 더욱 그럴 자격도 없다. 다만 대학의 아픔을 제대로 인식하고 그 치유를 위해 마음을 함께하는 움직임 대신 아직도 자기만을 챙기기에 골몰하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우리대학의 아픔을 두고 구성원들의 반응은 여러 가지로 나뉘는 모양이다. 한편에서는, “처음부터 불통이더니 내, 그럴 줄 알았어.” 하는 식으로 비아냥거린단다. 또 다른 쪽에서는, “남들도 다 그런걸 우리라고 별 대수 있겠냐?”면서, 세상 다 그렇고 그런 게 아니냐고 무질러댄단다. “직선제는 무슨 직선제, 대학에 패거리 문화만 양산하고 말았지.” 라는 부정론도 생각보다 많단다. 물론 그런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도 보태지 않고 있다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거보란 듯 찧어대는 ‘이죽거림’, 남이 하면 우리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 추수주의(追隨主義)’, 부분의 잘못을 전체로 확대하여 근간을 흔들어버리는 ‘부정주의’로는 대학의 아픔을 씻어내지 못한다. 오히려 서로의 마음을 헤집어놓고, 분열과 갈등을 불러올 뿐이다.     

이제, 우리 대학에 중병을 안겨준 원인의 하나가 된 총장 선거 일정이 확정되었다. 어떻게 돌려보아도 참 치욕스럽고 기가 막힌다. 그래도 어쩌랴, 선거는 치러야 하고 총장은 뽑아야 하는 것을.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이번 선거가 우리 대학의 아픔을 씻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선 기회를 기회로 알고 있는 사람을 먼저 찾아보자. 경우에 따라서는 본직을 내놓을지언정 대학의 자유와 자존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신념의 일단이라도 내비치는 사람이 있는지 찬찬히 둘러보자. 정 없다면 차선, 차차선의 후보라도 찾아보자. 우리 대학을 더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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