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6월, 전국에 울려 퍼졌던 민주화의 함성을 기억하는 세대는 이제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가 되었다. G20세대라 불리는 지금의 청·장년층들이 하나, 둘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데 과연 이들 중 우리의 피 흘린 쟁취에 감동하는 이는 몇이나 될까? 많은 이들은 이를 개탄하며 변해버린 사회풍조에 대해 한숨을 쉬곤 한다. 허나 잃어버린 과거 타령을 하며 억지로 옛 정신을 강요할 수는 없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고 이 또한 수용해야하는 것이 구성원들의 몫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시 되는 것은 변화 자체가 아닌 변화의 방향이다. 과거 세대와는 달리 요즘의 젊은이들은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의 대립도 겪어보지 않았으며, 굶주림에 익숙하지도 않다. 이들이 태어난 세상은 이미 서구식의 민주주의가 승리한 이후의 시대였으며 자본주의 역시 미 레이건 정부의 신자유주의가 성행하고 있었고 금융자본이 경제주체의 우두머리를 차지해가던 시대였다. 그 결과 이제는 대다수가 어떤 것에 있어 당위성이나 도덕적인 물음을 던지기보다는 이것이 저것보다 실용적인가 아닌가에 선택을 맡긴다. 정치적인 해결은 오래 걸리고 고리타분한 것이며 기회비용을 따져 합리적인 결정이 최선의 결정이라는 결과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이런 표현을 쓰고 싶은데, 결과중심적인 사고방식이 바로 우리를 ‘갉아먹고 있다.’라는 것이다.

혹자는 2011 유로존 경제위기를 바라보며, 복지중심의 비효율적인 제도운영이 빛을 바랐다고 한다. 때문에 이것은 유럽연합의 위기이며 노력한 만큼 얻어가는 자본 중심의 사고가 과연 최고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유럽연합의 시초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E)라는,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산업이었던 석탄에 대해 유럽의 주요 승전국과 독일이 연합체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들이 뭉쳤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전범국 독일을 견제하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지극히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서로 힘을 합치기로 합의했다. 그러한 방법이 석탄과 철강의 창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럽연합은 그 목적과는 달리 의외로 경제적인 분야에서 특히 효과를 거두기 시작했으며 유럽경제공동체(ECC)를 거쳐 유럽통화동맹을 통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비록 유럽연합이 경제적인 위기를 맞긴 했지만 그 시초는 지극히 독일 견제라는 정치적인 목적이었던 만큼 지난해와 올해의 지난한 위기 해결의 시행착오를 거쳐 유럽은 지금 제도개혁, 정부개혁 등의 정치적 방식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2012년 올해는 세계적으로 60여개의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해이다. 중동이나 남미 등의 일부 독재국가와 유럽이 다른 것은, 문제가 일어났을 경우 자신들의 잘못을 철저히 인정하는 반성을 거쳐 더 나은 모습으로 태어난다는 것일 것이다. 따라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자신들의 위기해결 방식으로 바로 ‘선거’를 택했다. 유럽연합에서 2위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긴축재정은 유로존 위기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였으나, 이제 프랑스의 정권은 다시 구성되었다. 이번 경제 위기의 출발점이라고 하는 그리스 역시 최근의 총선을 통해 드디어 개혁을 선택하였으며 여기서 이를 논하는 이유는 이것이 바로 국민의 의사를 표현해 준다는 것 때문이다.

결국 선거는 우리의 의사를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확실하고, 때론 엄격한 방법이다. 역시 많은 이들, 특히 요즘의 경제적 사고 중심의 젊은 세대들은 이를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로 이것이 문제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 사회문제의 해결은 바로 이처럼 선거, 즉 투표를 통한 정치적 해결과정이 근본적인 답안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과거 경제발전을 가능하게 했던 선성장후분배라는 개념은 이제는 정말 과거의 단어가 되어버렸음은 자명하다. 인간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이해와 득실의 잘잘못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이를 깨달았을 때 진정한 발전과 진보가 가능하며 나아가 선두국가의 지위도 얻을 수 있다.

오늘날 큰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이 땅이 젊은이, 흔히 대학생으로 대변되는 이들은 이제부터 많은 것을 지금과는 반대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과정을 거친 정책의 실현이나 갈등의 해결이 사실은 가장 빠른 지름길이며, 이를 실현해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선거에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다가오는 12월 대선에서 확실히 보여줄 수 있으며 무관심과 비관주의는 이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임을 알 때 이 땅은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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