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만으로 이야기한 2주, 진료하며 마음과 사랑 나눠

▲ 레게머리에 알록달록한 머리핀을 찌른 여자 아이. 이처럼 대부분 아이티의 여자들은 곱슬머리를 관리하기 위해 레게머리를 하고 머리핀이나 머리끈으로 장식한다.

나라를 망쳐버린 지진, 진흙쿠키. 아이티에 대해 흔히들 떠올리는 생각이다. 그러나 2주 동안 보고 느꼈던 아이티는 생각했던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 맑은 물은 없었지만 웃음이 있었고 깨끗한 옷과 신발은 없었지만 예쁜 머리핀이 있었다.

지난달 10일부터 25일까지, 우리 대학은 전남대학교 병원, 세아상역(주)과 함께 아이티로 산·학 공동 해외의료봉사 ‘세계와의 어울림, 사랑과 문화의 나눔’을 다녀왔다. 카라콜(Caracol) 지역과 떼라 우지(Terrier Louge) 지역에서 4,500여명의 환자를 돌보는 동안 기자는 처치실 한 쪽에서 진료 차트 정리, 약국 재고 파악 등의 활동을 했다. 진료 차트를 가지러 약국으로 가는 동안 만난 사람들, 처치실에 온 환자, 봉사단원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 등을 두 번에 걸쳐 지면에 담는다. /엮은이

멀고 먼 아이티
도미니카공화국 옆에 위치한 아이티는 “아이티를 가야지”하고 다짐하더라도 오늘 당장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A형 간염, 파상풍, 장티푸스주사에 황열병 주사 까지 총 네 번의 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티를 떠나기 이주 전부터 말라리아 약을 먹어야 한다.

주사를 맞는 것은 그렇다 쳐도 말라리아 약이 고역이었다. 말라리아 약은 작은 크기의 하얀색 알약인데 약을 먹기만 하면 속이 뜨겁고 어지러워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것을 앞으로 일곱 번을 더 먹어야 한다니. 아이티로 출발하기도 전에 지쳐 버렸다.

아이티를 가는 방법도 힘이 들었다. 한국에서 아이티까지 한 번에 갈 수 있는 비행기는 없다. 인천에서 뉴욕까지 열 세 시간, 뉴욕에서 마이애미까지 세 시간, 마이애미에서 아이티 까지 세 시간. 그렇게 열아홉 시간을 하늘에서 보낸 후에야 드디어 아이티 캡페이션(Cap Haitien) 지역에 도착할 수 있다.

“자, 진료 준비를 다 해놓고 쉽시다. 조금만 힘을 냅시다.”

아이티 숙소에 도착했으니 이젠 좀 쉴 수 있나 싶었는데, 점심만 먹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진료 장소인 카라콜 지역으로 이동해 진료실을 정하고 진료기기를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행기 멀미에 버스 멀미까지. 본격적인 진료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체력이 소진돼 몸과 마음이 고단했다.

밝게 웃으며 “본쥬!”
“얼굴과 몸은 까만데 손바닥과 발바닥은 하얘서 조금 놀랄 겁니다. 또 흑인들 특유의 냄새가 있어 가까이 다가가서 진료하기에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니  밝게 웃어준다면 그들 역시 밝게 웃을 겁니다.”

의료봉사 첫 날, 진료 장소로 가는 버스 안에서 현지에서 일하는 세아상역(주) 직원 분께 들었던 말이었다. 말을 들을 때만 해도 ‘손, 발바닥이 하얘봤자 얼마나 하얄 것이고 사람들 누구에게나 나는 냄새쯤이야’ 싶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까만 손등과 노란 손바닥은 피아노의 흑백 건반처럼 너무나 대조됐다. 흑인에게서 나는 냄새 또한 익숙지 않은 새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티 사람들도 피부색, 머릿결, 냄새가 전혀 다른 나를 보며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우린 지구의 정 반대의 곳에서 사는 사람들이니까 서로 다른 것이 당연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밝게 웃으며 “본쥬(안녕)”하고 인사했다. 그제서야 앞에 서있던 빨간 원피스의 여자아이도 밝게 인사해준다. “본쥬!”

조금 더 용기를 내 여자아이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가 알록달록한 머리핀을 만졌다. 이곳 여자들은 모두 레게머리를 하고 남자들은 머리를 짧게 자른다.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를 관리하기 위한 이들만의 방법이다. 게다가 여자아이들은 레게머리 끝에 알록달록한 핀을 찌르거나 작은 머리끈으로 묶어 장식을 한다. 색이 다양한 것만큼 모양도 동그란 것, 네모난 것, 매끈한 것, 우둘투둘한 것 까지 다양하다.

잠을 잘 때 머리핀에 찔려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하고 화려한 머리 장식을 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물어 볼 수 없었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웃으며 머리핀만 만지고 있으니 여자아이도 덩달아 웃는다. 내가 짓는 미소만으로 예쁘다는 말을 알아들은 모양이다.

▲ 아픈 다리가 완전히 낫자 마이카의 엄마는 고맙다며 선물로 사진을 줬다. 박찬용 외과 의사는 “우리가 더 고맙다”며 마이카, 마이카의 엄마와 함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건넸다.
다행이야, 마이카
언어는 통하지 않지만 행동만으로 마음이 통한 경우가 또 있었다. 진료 넷째 날, 한 아이의 엄마가 진료가 끝났는데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옆에 서 있었다. 머뭇머뭇 거리더니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딸이 아픈 곳이 많이 좋아졌대요. 고마움의 표시로 주는 선물이라네요”하고 통역사가 말을 전한다.

수줍게 내민 사진 속에는 차리스 마이카(CHARSES MAIKA)가 분홍색 드레스를 입고 리본 모양의 머리핀을 찌르고 밝게 웃고 있었다. 한껏 꾸민 옷차림새로 보아 중요한 날 찍어둔 사진으로 보이는데 의사에게 선뜻 건넸다. 옆에 있던 통역사의 손에는 생선 세 마리를 쥐어 줬다.

7살 정도 되는 마이카는 둘째 날에 왔던 환자다. 진료를 하러 왔을 때에는 왼쪽 다리가 부어 있었고 열도 있었다. 언제부터 다리가 부은 것인지, 왜 이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다리에 고름이 차 걷기 불편한 것은 분명했다. 박찬용 외과 의사는 다리에 차 있던 고름을 빼고 소독을 했다. 다음 날에도 다시 차오른 고름을 빼고 소독을 해줬더니 진료 넷째 날에는 고름이 모두 빠졌다. 당연히 열도 내렸다.

박찬용 외과 의사는 “완치 돼 기쁜데 사진까지 받으니 쑥스럽다”고 웃으며 사진을 주머니 깊숙한 곳에 조심히 넣었다. 곧이어 “사진을 받았으니 우리도 사진을 주겠다”며 마이카, 마이카의 엄마와 함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언어를 몰라 “하나, 둘, 셋”을 말할 수도 없었다. 아무런 준비음도 없이 한 번에 찰칵.

“메시, 메시(고마워요).”

사진 속의 세 사람 모두 시선이 달라 예쁘게 나온 사진이 아니었지만 마이카 엄마는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다. 우리는 그저 한국에 흔하게 있는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 건넸을 뿐인데 이렇게나 마음에 들어 하다니. 우리도 “메시.”

저작권자 © 전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