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을 앞둔 며칠 전 정년퇴임을 앞둔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오랜만에 찾아뵙는데 그냥 가자니 손이 부끄럽고 무언가를 들고 가자니 고학의 처지에 지갑이 부끄러웠다. 연일 더운 날씨에 달달한 팥빙수를 살까? 아니면 시원한 커피 두잔 들고 갈까?를 고민하다 여자친구의 아이디어로 떡과 시원한 식혜를 사들고 연구실로 향했다. 점심이 훌쩍 지난 오후의 중턱, 박스에 담겨진 책들과 책장에 흩어져 있는 논문들로 보아 연구실 정리를 하시며 교수님은 점심을 거르신 모양이었다. 마침 들고 갔던 떡과 식혜가 교수님에게 맞춤한 식사가 되었다. 그렇게 30년 넘게 연구하며 정들었을 연구실에서 앉아 찾아뵙지 못하는 동안의 나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연구자로서 지역과 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좋은 말씀을 많이 듣고 나오는 길, 교수님께서 하얀 편지 봉투에 당신께서 요즘 좋아하신다는 문구를 적어 주셨다. 떡값(?)과 함께...
진광불휘(眞光不輝).진짜 빛은 번쩍이지 않는다. 즉, 진실한 광채는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고어였다. 정독실로 돌아와 한참을 쳐다보며 뜻을 새겨보았다. 단 몇 번의 눈익힘으로는 그 뜻을 모두 알 수 없기에 벽에 붙여주고 시선이 다을 때마나 생각해본다.
빈수레가 요란한 법이라는 속담과 맥이 통하나 반대의 의미를 지닌 글귀일 것이다. 빛이 우리에게 인식되는 것은 번쩍이는 속성으로 인한 것일 텐데 진짜 또는 진실하다는 형용사로 인해 번쩍이지도 않고 드러나지도 않는 다는 것이 60년을 훌쩍 넘긴 교수님의 삶과 함께 나에게 많은 사색을 하게 한다.
다른 때 보다 일주일이 빠른 개강으로 짧게만 느껴졌던 방학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학기의 새로운 목표에 대한 계획과 결의를 세우며 보내는 요즘이다. 1인당 국민총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며 과거의 고속성장은 경기의 부침에 따른 저성장세를 유지하고 있고, 그에 따른 청년들의 고용 환경에도 많은 변화와 어려움이 있으며 또한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열여덟번째로 이끌 대통령을 선출하는 해이기한 2012년 하반기 새로움에 대한 열망은 좋지 않은 경제지표에 반하여 더욱 높아져 갈 것이다. 그리고 청춘의 시절 자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지역을 위해,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해보겠다는 다짐 또한 높을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무언가를 하기에 좋은 청년의 대학시절, 외형적 아름다움과 스펙을 위한 노력을 저급으로 생각하지도 표현하고 싶지도 않지만 요란하고 번쩍이게 자신을 꾸미는 것보다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해도 내면의 묵직함과 깊이를 채울 수 있는 활동과 노력,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진수무향(眞水無香), 진광불휘(眞光不輝) - 참된 물은 향기가 없고, 참된 빛은 반짝이지 않는다. 사물의 진면목을 꿰뚫어 보는 것으로 사람의 됨됨이와 겸양의 미덕을 쌓아가는 새학기가 되기를 나에게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