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 ‘대학 역사관’이 위치한 용봉관. 용봉관은 개교 초창기인 1957년 건립된 것으로 1997년까지 40년간 대학본부로 사용돼 역사관의 공간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용봉관 2층에 ‘대학 역사관’ 주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있다.
우리 대학 ‘대학 역사관’이 위치한 용봉관. 용봉관은 개교 초창기인 1957년 건립된 것으로 1997년까지 40년간 대학본부로 사용돼 역사관의 공간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용봉관 2층에 ‘대학 역사관’ 주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있다.

네 명의 관람객. 휠체어를 탄 할머니 한 분, 등산복 차림으로 5·18사진 앞에 멈춰선 두 명의 남성 그리고 기자. 우리는 가볍게 눈인사를 건네며 각자 전시물을 바라 볼 뿐이었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패널의 큼직한 글씨체, 그리고 각 테마별로 비치된 사진과 영상. 낡은 역사 물품의 고상함 그리고 전시물과 관련된 설화. 누군가에겐 추억 여행을 떠나는 곳, 누군가에겐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곳, 또 다른 이에겐 취재의 대상이 되는 곳. 그리고 모두에게 역사와 과거를 바라보는 맥락을 조성하는 곳. 지난달 27일 오후 3시경 ‘대학 역사관’(용봉탑 뒤 ‘용봉관’ 2층)의 풍경이다.

역사관 다섯 테마로 구성…'과거·현재·미래를 한눈에'
기자는 ‘우리 대학의 역사 사료를 어떤 맥락으로 어떻게 전시해두었을까’라는 고민과 함께 관람을 시작했다. ‘대학 역사관’은 개교 60주년을 맞아 지난해 9월부터 건립을 추진했으며 지난 6월 27일 개관했다. 관람객들에게 대학의 과거와 현재를 가까이서 느끼는 기회를 제공하고 대학의 발전적 미래를 내다보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것. 역사관은 ‘대학발전사’, ‘대표와 상징’, ‘대학일람’, ‘체험존’, ‘추억여행’ 등 총 다섯 개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처음 역사관에 들어서면 우리 대학이 용봉동에 들어선 이유를 설명한 텍스트가 눈에 띈다.

“용봉동에는 한림학사가 탄생한다는 설화가 있어 1909년부터 농과대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용과 봉은 무한한 상상력과 가능성을 내포하고…용봉동은 길지(吉地)의 지형에 국가 최고 동량(棟梁)을 양성하는 대학의 의미를 지닌 지명이 갖춰져 대학 부지로 선정되었다. 전남대는 1954년 합동강의실에서 건설기공식과 지진제를 거행하였고 용과 봉은 서서히 날아오기 시작한다…” 풍수지리설에 문외한인 기자는 ‘장소가 정말 인간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끼칠까’라는 생각과 함께 발걸음을 왼편으로 옮겼다.

용지는 왜 만들어진 걸까?

▲ 1969년부터 우리 대학 용지 초기 공사가 시작됐다. 1971년 캠퍼스 조경을 통해 ‘용지’ 터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학발전사’ 전시실엔 우리 대학의 변천 과정을 총 4가지로 나눠 전시가 이뤄졌다. 전시는 ‘설립의 모체 전신교육기관’, 종합대학 구축과 캠퍼스 조성(1952~1961), ‘군부독재시대의 역경과 성장(1961~1987)’, ‘총장직선제의 출범과 대학의 변화(1987~2012)’로 구성돼 있다. 또한 우리 대학의 굵직한 사건들을 연표와 함께 정리해뒀다. ‘우리 대학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애니메이션도 꽤 볼만했다. 영상은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우리 대학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려 준다. 등장인물은 총 4명이다. 할아버지, 아버지, 딸이 모두 전남대 출신 그리고 딸의 공대생 남자친구가 등장한다. 실소를 유발하는 남친의 드립력이 훌륭하다.

‘대표와 상징’ 전시관에는 캠퍼스 항공 위성사진이 매력적이다. 1950년대부터 2000년도의 캠퍼스 변화 과정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특히 70년대까지 캠퍼스 내에 있던 마을 두 곳이 인상 깊었다. 어느 교수의 “옛날 캠퍼스는 전망이 확 트여 보기 좋았다”는 여담이 떠올랐다. 옛 캠퍼스 조경을 보면서 역사관 전시를 담당한 황호균 학예사는 용지와 관련된 일화를 소개했다.

“대운동장 옆에 있는 마을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는 의미의 ‘용주마을’이고 경영대 뒤의 마을은 용트림을 한다는 의미의 ‘반용마을’이다. 1969년 초, 한 도인이 전남대를 돌다 총장실을 찾았다. 도인은 용이 승천하려면 큰 연못이 있어야 한다는 귀띔을 했다. 당시 박하욱 총장은 그 말을 듣자마자 용지 건립을 추진했다고 한다. 불도저 2대 빌려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던데... 70년대 이후로 우리 대학의 고시 합격자나 민주화 열사들이 많이 나온 걸 보면 인재를 양성하는데 용지의 기운이 작용했던 게 아닐까라는 고담이 전해온다.” 연인들이 입술박치기 하는 장소로만 유용한 줄 알았던 용지와 봉지, 좋은 기운을 발산하나 보다.

시각적 효과 극대화…단순 사실 전달에 치중한 점 아쉬워
‘대학일람’ 전시관은 말 그대로 일람이다. 한 번 쭉 훑어보기 좋다. 대학 조직, 시설 및 학위 수여, 국외 대학과의 교류 현황 등에 관한 정보를 진열해 놓았다. ‘체험존’에 들어선 순간 ‘옛 교정 조각 맞추기’에 시선을 뺏기고 만다. 필자가 처음 역사관에 방문했을 때 몽탄중학교 학생들이 퍼즐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또 체험존엔 시각적 효과를 강조하기 위한 노력들이 돋보인다. ‘터치 캠퍼스’와 ‘교정 산책 영상’을 통해 학내의 명소들을 소개했다. 스크린의 점자를 톡 만지면 교정의 멋진 사진이 등장한다.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교정 산책 영상에 사진만 나온다는 점이다. 전남대의 캠퍼스 투어 코스를 몇 가지 제시한다든지 인문대 1호관과 사범대 벽화, 5·18민중항쟁 기념사적지, 관현로 등이 갖는 의미 등을 영상에 곁들였다면 관람객들의 호응이 좋았을 거라 본다.

당신의 청춘, 가슴 뛰는 나날이었나요?

▲ 빛바랜 학생증을 통해 우리 대학의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마지막 전시실인 ‘추억여행’ 공간은 관람객들의 기억필름을 끄집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특히 졸업생들에겐 대학 시절의 과거와 현재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제법 잘 조성돼 있다. 교복을 보며 ‘용봉스타일’을 느끼고 옛 성적표, 학과 활동 기록물 등을 통해 본인의 대학 시절을 회상하게 한다. 어떤 이에겐 첫사랑을 누군가에겐 민중가요를 부르며 시위에 참여했던 기억을 또 다른 이에겐 선후배들과 막걸리 한 잔 걸치면서 시국을 논했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을까? 필자가 30년 뒤에 역사관을 찾는다면 어떤 추억을 떠올릴지 궁금하다.  ‘그 땐 그렇게 살았었는데’라는 생각을 미래의 삶과 결부 지을 수 있을까. 혹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아쉬움에 빠질 수도. 왠지 눈빛만 봐도 통했던 그녀를 떠올린다거나 대학신문을 만들며 2학생회관에서 숙식했던 치열함을 되새김질할 듯하다. 
 
또한 자필로 쓴 시국선언문, 교련 실습용 장총, 졸업앨범, 단과대 교지, 수강과목 신청표, 강강술래와 쌍쌍파티 등이 메인행사인 옛 대학 축제 등이 생소하면서도 흥미를 자극했다. 김원기 선수(체육교육학·80)의 LA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과 각종 운동부의 설립과 해체, 전국 대학 체육대회 등 지금과 다른 옛 체육 문화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어 5·18민중항쟁 당시 정문 사진과 김남주 시인의 <역시> 앞에 멈춰 섰다. 공동체 정신과 민주화를 위한 열망, 정의로움에 고개 숙여 진다. 나뿐만 아니었다. 경북대학교 학생 정원영(경제통상학․07)씨는 방학을 맞아 우리 대학에 오자마자 역사관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역사관 관람 후 5·18민중항쟁의 상징성을 갖고 있는 전남대가 부럽다”며 “그 당시 학생들이 주체가 돼 민주화의 선봉에 선 역할을 했음을 깨달았다”고 역설했다.

▲ 몽탄중학교 학생들이 지난달 24일 역사관을 방문해 전시물을 관람 중이다.

역사관을 나서기 전 미처 못 봤던 관람객들의 표정과 행동이 보인다. 수많은 추억에 웃음 짓던 어르신, 사진 촬영 삼매경인 아저씨, 옛 성적표와 학생증에 신기해하는 사람들. 당신도 한 자리에서 전남대 60년의 역사를 느껴보는 건 어떨까.

<관람 Tip>
1. 개관 시간: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 장소: 용봉관(용봉탑 뒤 건물) 2층 주전시실
2. ‘민주전시관’ 8월 중 개관 예정, 전남대 민주화 운동의 역사 한 곳에 담는다   
3. 상시 역사자료 수집․ 관리․ 보존/ 단과대 역사 기획전시 등 다양한 전시 예정
4. 단체로 관람 시, 역사관 측의 안내 가능 (역사관 관련 문의사항 062-530-3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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