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문>이 연일 화제에 오른다. 감독이 초청되는 상영에는 연일 매진이 이어진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이 영화가 “다큐 장르 자체의 본령과도 닿아 있고 향후 동시대 다큐 감독들에게 일종의 기준으로 언급되기를 기대한다”고 까지 말했다.

이 영화를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유독 낮은 평점이 눈에 띈다. 평점을 보면, 59%가 1~2점에 투표했고 39%가 9~10점에 투표했다. 영화를 보고 공분을 하며 정의감에 불타게 된 관객들은 저것이 어떤 집단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59%면 2천명이 훨씬 넘는 인원이 이 투표에 참가했다는 것인데, 9~10점에 투표한 39%의 사람들이 전부 제작사나 배급사 알바는 아니듯 2천명이 넘는 저들도 전부 알바는 아닐 것이라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 2천명은 어디서 갑자기 나온 알바가 아니라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2009년 당시의 용산참사를 다룬 포탈사이트 뉴스에 철거민에 대한 욕설을 쓰고 공감했던 ‘그 사람들’일 것이다.

이 영화는 근사한 영화지만 그 사람들에 대한 관점에서 한계를 보인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이런 참사가 일어났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그것에 제대로 분노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는 그 일을 금세 잊어버리거나 심지어는 희생된 철거민들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하는 현실을 정권의 개입으로 설명하려 한다. 용산참사에 대한 여론 무마용으로 군포 연쇄살인 사건을 적극 활용하라는 청와대 문건의 내용과 용산 참사 일주일 뒤에 이어진 군포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언론보도를 그 증거로 든다. 용산참사 직후에 보수 언론에서 쏟아진 철거민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가 선량한 시민들의 분노를 왜곡하여 그 사람들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이 쪽’ 편이 아닌 ‘저 쪽’ 편인 경찰의 증언과 채증 영상을 위주로 용산참사를 재구성하면서 참사에서 희생된 철거민 다섯 명보다는 경찰 한명의 희생을 설명하려 한다. 우리 모두는 그저 살기 위해서, 직업이니까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나쁜 것은 저 자리로 모두를 내몰았던 ‘저 높은 분들’뿐이라고.

이 영화의 상영관이 블록버스터보다 적고, 네이버 평점이 낮은 건 정권의 개입이라거나 모종의 음모 같은 것들만으로는 이야기 할 수 없다. 용산참사는 콘크리트 더미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욕망들이 결탁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도, 국가 권력이란 원래 폭력적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거창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잘 하려고 한 것이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관객들에게 불편함보단 공분하며 정의감을 불태우는, 그러니까 자족감에 봉사하고 스펙터클에 대한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 혐의가 있는 장면 몇 개가 끝내 거슬릴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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