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정민 교수.
대통령 선거의 해가 되자 우리 정치판은 예나 다름없이 정제되지 못한 말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육두문자 말에서 개인의 인격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폭력적인 언사에 이르기까지 많고도 많다. 이른바 음모가 은닉된 정치적 말들의 활극이 달아오르고 있다고나 할까. 두말할 것 없이 그 가운데서도 으뜸은 '종북주의'라는 말이다. 종북주의 인사, 종북주의 단체, 종북주의 세력 등 현 지배체제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이나 단체에는 어김없이 종북주의를 가져다 붙인다.

종북주의라는 말이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말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화된 정치용어나 이념용어도 아니고, 학술 용어는 더욱 아니다. 굳이 말의 쓰임새로 보면, 50년대 60년대의 '빨갱이',  70년 80년대의 '간첩'과 '용공분자'의 다른 말인 듯싶다. 극렬한 우익집단들과 그들을 바탕으로 언론권력을 형성하고 있는 '조·중·동' 신문들이 진보세력들을 공격하기 위해 빨갱이나 용공분자 대신 급조해 낸 말이라는 것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서 컴퓨터조차 이 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잘못된 표현이라는 식으로 그 말 아래에 밑줄을 북 그어놓는다.

그런데 이 정체불명의 어휘가 아무데서나 거칠 것 없이 횡행하고 있어 문제다. 이 말이 진보정당과 평화통일 세력에 대한 비판 용어로 등장했다가 지금은 현 정권과 새누리당에 반대하는 모든 세력을 싸잡아 지칭하는 용어로 바뀌고 있다. 게다가 이명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얼굴이라는 박근혜 의원이 종북세력을 정치권이나 국회에 들여서는 안 된다고 분별없이 거들고 나서면서 이 말은 더욱 광포한 흉기가 되어가고 있다. 새누리당은 전 정권의 국무총리들까지 종북주의자로 매도하면서 그들에 대한 사상 검증을 해야 한다고까지 나섰다.

물론 현 집권세력의 종북주의 공격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런데도 집권세력들이 이 종북주의라는 맹랑한 어휘를 정치적 공격 무기로 즐겨 사용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종북주의라는 말이 귀걸이 코걸이 식으로 애매하여 큰 책임 없이 상대를 실컷 두들겨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정치적 상대자를 빨갱이나 용공분자로 직접 지칭하게 되면 인격모독이나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당장 법적 제제를 받을 수 있는데, 종북주의로 공격하면 그 법망을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앞으로 박근혜 의원이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된다면 불거질 수 있는 독재 반독재 논란을 이 종북주의 카드가 미리 희석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박정희 체제는 오늘까지 잔존해 있는 종북세력으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둘러치면 그 상대편에서는 무어라고 할까. 종북주의라는 말은 독재 논란을 희석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아예 빨아들여 '논란 없음'으로 만들어버릴 '아메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그동안 정치판을 휘저어댄 음모적 언어들이 우리 정치를 얼마나 피폐하게 했는가를 기억한다. 이승만에서 박정희, 전두환에 이르는 40여 년 동안 이 땅의 독재정권은 우리의 민주정치언어를 뒤주 안에 완전히 가두어두고, 붉은 딱지 붙이기 식의 반민주적 언어들을 양산함으로써 민주정치의 실종을 불러왔다. 삶의 정치가 아니라 죽음과 저주의 정치였다. 제발 이제라도 정상적인 정치언어를 회복하여 정치가 우리의 삶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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